■ 어머니 기억記憶 / 신석정
ㅡ 어느 소년少年의 ㅡ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 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였다. 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 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海風속에 묻혀 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이따금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청개구리처럼 갑자기 외로웠었다.
쏴아… 먼 바닷소리가 밀려오고, 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바다가 흔들리고, 우루루루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꽃이 들어왔다. 산수유꽃 봉오리에서 노오란 꽃가루가 묻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보리가 무두룩이 올라오는 언덕길에 비는 멎지 않았다. 문득 청맥靑麥죽을 훌훌 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것은 금산리琴山里란 마을에서 가파른 보릿고갤 넘던 내 소년시절의 일이었다.
■ 오월의 어느 날 / 목필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 앉았는데
오월 익어가는 어디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
네 이름 석 자
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 오월의 시 / 이문희
토끼풀꽃 하얗게 핀
저수지 둑에 앉아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는 한 덩이 하얀 구름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 속에 들어가
빛 바랜 유년의 기억을 닦고 싶다
그리고 가끔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위에 드리워진
아카시아 꽃 향기를 가져다가
닦아낸 유년의 기억에다
향기를 골고루 묻혀
손수건을 접듯 다시 내 품안에 넣어두고 싶다
오월의 나무들과
풀잎들과 물새들이 저수지 물 위로
깝족깝족 제 모습을 자랑할 때
나는 두 눈을 감고
유년의 기억을 한 면씩 펴면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거닐고 싶다
하루종일 저수지 둑길을 맴돌고 싶다
/ 2021.05.11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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