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세월호 추모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 '난파된 교실' 나희덕, '슬픈 고백' 이해인 (2021.04.16)

푸레택 2021. 4. 16. 17:54

■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배가 더 기울까 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 시인)

■ 난파된 교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나희덕 시인)

■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7분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딜 떠돌고 있느냐
어느 어두운 심연에서
저 키 큰 바다의 울음소릴 듣고 있느냐
너는 지금 물소리에 싸여 내걸린
저 노오란 편지지에 쓴 글자들이 너의 바다로 가고 있는 걸 보고 있느냐
거대한 꿈 하나가 너의 꿈 위로 떠다니며
너의 가슴께에서 촛불을 들어올리고 있는 걸 보고 있느냐

그날 네가 떠난 항구에는 낮은 바람이 불고 있었지
네 걸음소리 모래에 자국을 내며 달리고 있었어
너는 웃으며 배의 날개를 붙잡았었지
출발의 입구, 날개를 붙잡았었어
그리고 웃었어
지영이, 준영이, 희명이, 정희, 순이, 금이, 유화……
모두 웃었어, 날개를 달고 웃었어
그리 꿈도 크더니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10시 17분

아, 지금 어디 있느냐
너를 찾는 조명탄 노오란 불빛
어느 파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느냐
조명탄 노오랗게 날리는 파도 사이로
어디서 만리 꿈길에 희망 섞어, 구원 섞어
또 하나의 출발이 되고 있느냐
바다에도 뭍에도 추억의 가방들 발버둥치는데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10시 17분
희망도, 영원도 노오란 노오란 리본, 바람 부는 봄밤 10시 17분
이제 우리 모두 한 꿈 되어 누우리
불멸의 한 이불 노오랗게, 노오랗게 덮으리
(강은교 시인)

■ 슬픈 고백 - 세월호 추모시 

진정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울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내내 궁리만 하다 1년을 보냈어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기도의 향불을 피워 올려도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어도
2014년 4월16일 그날
세월호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갈수록 큰배로 떠올라
우리가슴 속 깊은 바다에 가라앉질 못하네요

함께 울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함께 울지 못하고
잊지 않겠다 약속하고도 시시로 잊어버리는
우리의 무심한 건망증을 보며
아프게 슬프게 억울하게 떠난 이들은
노여운 눈빛으로 우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득 부끄럽고 부끄러워
세월호 기사가 나오면 슬그머니 밀쳐두기도 했죠

오늘도 저 푸른 하늘은 말이 없고
여기 남아있는 지상의 우리들은
각자의 일에 빠져 타성에 젖고
적당히 무디어지는데......

일주기가 된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컷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죄와 잘못을 참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죄 없이 희생된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 승무원들과 일반 가족들
구조하러 들어가 목숨을 잃은 잠수부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면서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두 주먹으로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끝나지 않은 슬픔이 그래도
의미 있는 옷을 입으려면
여기 남아 있는 옷을 입으려면
여기 남은 우리가
더 정직해지는 것
더 겸손하고 성실해지는 것
살아있는 우리 모두 더 정신 차리고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배우고 또 실천하는 것
공동선을 지향하는 노력으로
신뢰가 빛나는 나라를 만드는 것
나비를 닮은 노란 리본보다
더 환하고 오래가는 기도의 등불 하나
가슴 깊이 심어놓는 것이 아닐까요

아아 오늘은 4월16일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과 제비꽃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곱게 꽃문을 여는데
그들은 우리와 같이 봄꽃을 볼 수가 없네요
물 속에 가라앉은 님들은
더 이상 웃을 수도 없고
더 이상 아름다운 수평선을 
우리와 함께 바라볼 수가 없네요

죽어서도 살아오는 수백 명의 얼굴들
우리 대신 희생된 가여운 넋들이여
부르면 부를수록
4월의 슬픈 꽃잎으로 부활하는 혼들이여
사계절 내내 파도처럼 달려오는
푸른빛 그리움, 하얀빛 슬픔을 기도로 봉헌하며
이렇게 슬픈 고백의 넋두리만 가득한
어리석은 추모를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도!
(이해인·수녀 시인)

youtu.be/tTym0fGTk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