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지식] 동물의 이타주의, 이타적 유전자 (2021.03.14)

푸레택 2021. 3. 14. 09:45

● 동물의 이타주의

동물의 집단생활에는 협동적인 활동이 많이 관찰된다. 더러는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남의 생존이나 번식을 위해 위험과 마주 싸우는 것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행동을 하는 주체에게는 해가 되나 다른 개체에게는 유익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이타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철저한 자기희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즉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기손실이라는 것이 있을까? 예를 들어 철로 건널목에서 놀고 있는 자식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뛰어드는 엄마는 과연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유전적 투자를 위한 것인가? 또 조카를 돕는 삼촌이나 남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의 행동은 과연 어떤가? 물론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의 전통적 도덕과 가치를 의심하는 말이므로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은 그 자체가 분석이며 원리의 발견이므로 이를 혼동하여 처음부터 거부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물이 임신하면 에너지를 태아에게 빼앗기고 동작이 둔해지므로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성이 커진다. 그러한 희생을 무릅쓰지 않는 동물은 다음 대를 남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컷 역시 암컷을 찾는 동안 포식자에게 희생될 가능성이 있으며, 새끼를 낳게 되면 먹이를 날라주고 보호해 주느라 에너지 소비가 많아 역시 자신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임신한 암컷과 마찬가지로 그 위험의 대가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대로 물려줄 수 있다. 결국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행동은 어버이 자신의 유전물질을 자식을 통해 보존하고 확산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개미·꿀벌·흰개미 사회를 관찰함으로써 더욱 확실해진다.

암컷인 일개미들은 자기의 동생들이기도 한 일개미의 애벌레들을 키우고 지키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 이유는 유전적으로 볼 때 암컷은 세포 내에 염색체를 2배체(2n) 상태로 갖고 있는 데 비해, 수컷은 여왕이 미수정란을 낳아 부화한 것이므로 반수체를 갖고 있어서 동생인 일개미의 애벌레들과는 유전자의 3/4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끼를 낳는 일(이 경우는 자신의 유전자의 1/2을 전해주게 됨)보다 동생을 잘 키워 살아 남게 해주는 일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보다 많이 보존하고 확산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진화). 따라서 이들 일개미들은 여왕개미가 더 많은 새끼, 즉 자신의 동생들(일개미)을 낳도록 돕는다.

그러면 혈연관계가 먼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이타주의는 왜 일어나는가?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본 다른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구해준다. 어째서 그를 구해주는 것일까? 이밖에 남남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구조 행동과 도움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그렇게 도움으로써 구조자 역시 그다음에 어떤 위험에 처할 때 반대급부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처음의 구조자는 결국 자신의 유전물질을 계속 보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타행동을 유도하는 유전자를 구조자들은 이미 유전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사람들이 사회·국가 등에 충성·협조하고 또 재산헌납 등을 통해 도우면 사회·국가 등은 그 반대급부로 이들을 도와 협조자들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상호적인 구조행동을 '상호이타행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행동은 주로 구조자의 세포 속에 든 유전물질에 의해 발현되는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여러 가지 변경인자에 의해 개체에 따라 그 발현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한편 친부모의 새끼에 대한 여러 가지 보호와 돌보기 행동도 이러한 '이타행동'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볼수 있다. 즉 모성애라는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일종의 유전적 투자정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자식은 보통 부모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에너지와 영양분의 몫보다 더 요구한다. 반대로 부모로서는 자신의 유전물질을 나누어 가진 자식들에게 제한된 에너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부모와 자식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부모·형제자매 그리고 자식이라는 것은 내편이면서 반대편이기도 한 역설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웃사랑이나 학교의 도덕 교육도 사실상 '상호이타주의'를 바탕으로 한 하나의 실리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다음백과 Daum

/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