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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지식] 인간에게 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접촉위안(contact comfort)’ (2021.02.01)

푸레택 2021. 2. 1. 15:49

■ 인간에게 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의 면도는 여성의 화장만큼이나 필요하면서도 성가신 일과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포유류 중 유일하게 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갑각류나 파충류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피부에 상처를 입기가 쉽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인간에게 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피부는 중요한 감각기관 중 하나입니다. 바로 ‘촉각’이지요. 촉각은 가장 무거운 감각기관입니다. 약 3킬로그램에 이르는 피부는 신경세포의 수용체로 차 있습니다. 촉각은 인간이 태어나 가장 처음 느끼는 감각이자, 다른 감각기관이 퇴화된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입니다. 만약 인간의 피부가 온통 두툼한 털이나 단단한 껍질에 뒤덮여 있다면 지금처럼 촉각에 예민하기는 불가능했겠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은 피부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털을 없애고 대신 촉각이 예민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뜻이 됩니다. 왜였을까요?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르네 스피츠 박사는 감옥에서 태어나 길거리에 버려진 아기들을 돌봤습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충분히 영양공급을 하는데도 아기들의 전염병 감염율과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어느 날,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근처에 있는 고아원의 아이들이 매우 건강한 데다 잘 울지도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위생적이고 영양공급도 형편없는 고아원이었는데도 말이지요. 비결은 이웃마을 여성들이 매일 고아원에 와서 아기들을 안아주고 이야기와 노래를 해주는 데 있었습니다. 여기에 큰 깨달음을 얻은 스피츠 박사가 병원에 돌아와 아이들과의 피부접촉을 늘렸더니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피부접촉 없이 유모차에서 자란 아이들은 점점 약해졌다’고 썼습니다.

피부를 일컬어 ‘밖으로 돌출된 뇌’라고 합니다. 현대의학에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이 뇌인 것처럼, 피부도 마음의 상태에 큰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피부에는 일정한 속도와 압력이 작용해야 활동을 하는 C-촉각 신경섬유가 있고, 피부접촉 행동을 통해 이것이 활성화되면 뇌에서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행복하고 안정된 기분을 끌어냅니다. 이를 ‘접촉위안(contact comfort)’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쓰다듬으면서 마음을 달래주는 행위를 대표적인 접촉위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접촉위안의 힘은 남이 나를 쓰다듬어줄 때뿐 아니라 내가 남을 만져줄 때도 똑같이 발휘됩니다.

이로써 왜 인간이 피부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털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더불어 공동사회를 이루어야 생존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타인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데 피부접촉만 한 것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악수가 그렇지요. 우리의 조상은 털에 뒤덮인 안전한 몸으로 사는 것보다 비록 털이 없어서 상처받기 쉬운 몸이 되더라도 타인과 피부접촉을 많이 하는 것이 생존에 더 이롭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피부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드는 현상을 보입니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위생적인 청교도 사회는 촉각의 체험과 만족에는 날이 갈수록 부적절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잡지, 영화, 텔레비전이 눈만 포식하게 하고 인간의 그 나머지 감각들은 무용지물로 만든다.”

혹시 그 결과가 건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건에서 살면서도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아픈 증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심지어 미국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출청소년의 90퍼센트 이상이 접촉결핍증에 걸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피부접촉이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체온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털이 없고, 껍질이 없는 피부 덕분에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온기’ 말이지요. 인류의 조상이 위험을 무릅쓰고 털을 포기한 피부를 우리는 타인과의 접촉에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을까요.

[출처]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지식너머

/ 2021.02.01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