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나 / 아잔 브라흐마
옛날에 어느 왕(王)이 사냥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왕은 사냥을 나갈 때면 언제나 자신을 수행하던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왕의 상처에 붕대를 감았다.
왕이 물었다.
“아무 일 없겠는가?”
의사가 대답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왕과 일행들은 사냥을 계속했다.
궁(宮)으로 돌아오고 나서 상처가 덧나자 왕은 그 의사를 다시 불렀다. 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조심스럽게 연고를 바르고는 붕대를 감았다.
왕이 걱정되어 물었다.
“확실히 괜찮겠는가?”
의사는 또다시 답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왕은 불안해졌다. 왕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며칠 만에 왕의 손가락은 너무 심하게 곪아서, 결국 의사는 왕의 손가락을 잘라야만 했다. 무능한 의사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왕은 직접 의사를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 감방에 처넣었다.
“감방에 갇히니까 기분이 어떤가, 이 돌팔이야!”
의사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대답했다.
“폐하, 감옥에 갇힌 게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요.”
“무능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왕은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몇 주 후, 상처가 아물자 왕은 다시 사냥을 하러 궁 밖으로 나갔다. 동물을 쫓다가 일행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왕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헤매던 왕은 숲 속 토인(土人)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날은 마침 토인들의 축제날이었는데, 그들로서는 밀림의 신(神)에게 바칠 제물이 생긴 셈이었다. 토인들이 왕을 큰 나무에 묶어놓고 제물을 잡기 위해 칼을 가는 사이 무당은 주문을 외우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당이 날카롭게 간 칼로 왕의 목을 치려다가 소리쳤다.
“가만! 이 사람은 손가락이 아홉 개밖에 없다. 신께 바칠 제물로는 불경스럽다. 풀어줘라.”
풀려난 왕은 며칠 만에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고,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가서 그 지혜로운 의사에게 말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느냐고 실없는 소릴 할 때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대가 옳았네. 손가락을 잃어버린 게 좋았던 거야. 하지만 그대를 감옥에 가둔 건 내가 나빴던 것이네. 미안하이.”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감옥에 갇힌 게 나빴다니요? 저를 감옥에 가두신 건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아니면 저는 그 사냥에 폐하를 따라나섰을 테고 제가 잡혔다면 제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열 손가락을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출처] 아잔 브라흐마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나무옆의자, 2015)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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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을지, 나쁠지
황해도(黃海道) 해주 사또인 어판득은 근본이 어부(漁夫)이다. 고기잡이 배를 사서 선주가 되더니 어장까지 사고, 해주 어판장을 좌지우지하다가 큰 부자(富者)가 되었다. 그는 어찌어찌 한양에 줄이 닿아 큰돈을 주고 벼슬을 샀고, 평양감사 아래 얼쩡거리더니 마침내 해주 사또로 부임했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고향 고을의 원님이 되어 권세도 부리고 주색잡기에도 빠졌다. 그렇지만 즐겁지 않고 뭔지 모를 허망함만 남을 뿐이었다. 처서도 지나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어느 날, 사또는 동헌(東軒)에 앉아 깜빡 졸았다.
사또는 어판득이 되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끌어올렸다. 조기떼가 갑판 위에 펄떡이자 그도 조기와 함께 드러누워 껄껄 웃었다. 꿈을 꾼 것이다.
이튿날, 사또는 백성들의 눈을 피해 어부(漁夫)로 변장하고 동헌 전속 의원인 마 의원만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 준비해 둔 쪽배를 타고 노를 저어 망망대해(茫茫大海)로 나갔다. 가슴이 뻥 뚫렸다. 옛 솜씨가 그대로 살아난 듯 그가 던진 그물엔 조기와 우럭이 마구 펄떡거렸다.
그는 호리병에 담아온 막걸리를 들이키며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손을 잘못 짚어 오른손 중지가 못에 찔려 피가 뚝뚝 흘렀다. 마 의원이 그 자리에서 약쑥을 붙이고 붕대를 감았다.
사또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겠지?”
눈을 내리깔고 있던 마 의원이 조용히 대답했다.
“좋아질지, 나빠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관아로 돌아왔는데 못에 찔린 손가락이 부어 오르고 통증이 심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며칠 후 마 의원이 사또의 다친 손가락을 칼로 째 고름을 빼내고 고약을 발랐다.
“내 손가락이 어떻게 돼가는 건가?”
사또가 묻자 마 의원은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다.
“좋아질지, 나빠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또는 몹시 기분이 나빴지만 마 의원이 연배도 위인데다 뭇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지라 꾹 참았다. 사또의 손가락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또는 무당 손에 들린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함쳤다.
“여봐라! 저놈 돌팔이를 당장 옥에 처넣어라.”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또는 그날 밤 감옥으로 마 의원을 찾아갔다.
“이 돌팔이야, 옥에 갇힌 맛이 어떠냐?”
그러나 마 의원은 목에 긴 칼을 쓴 채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또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또, 또, 또, 저 소리! 여봐라, 저놈을 끌어내 당장 곤장 열대를 안기렷다.”
한달 여 지나 사또가 붕대를 풀었다. 잘린 상처(傷處)는 말끔하게 아물었지만 오른손은 중지가 빠져나가 영락없는 병신이 되었다. 시름에 잠겨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사또는 또다시 바다가 그리워져 시월 상달 어느 날, 혼자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그때 수평선에 불쑥 솟아오른 황포돛배가 순풍을 타고 쏜살같이 파도(波濤)를 가르며 다가왔다. 이럴 수가! 그 배는 해적선(海賊船)이었다. 해적선 위로 잡혀 올라간 사또는 사색이 되었다.
해적(海賊)들은 갑판 위에 걸쭉하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용왕제를 지낼 참이다. 이들은 사또를 제물로 포획해 바다에 빠트릴 작정이었다. 이를 눈치챈 사또가 울며불며 발버둥을 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런데 사또를 묶던 海賊이 무언가 이상한 듯 두목을 부렀다.
“쯧쯧쯧, 이런 손가락도 없는 병신을 제물로 쓸 수는 없어!”
사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돌아왔다. 바로 의관을 차려 입고 감방으로 달려갔다.
“의원님의 깊은 뜻을 미처 몰랐습니다. 손가락이 없는 덕택에 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도 의원님을 이렇게 옥에 가두다니….”
사또는 손수 옥문을 열고 마 의원을 정중히 동헌(東軒)으로 모셨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사또가 거듭 머리를 조아리자 마 의원이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나으리 덕택에 제 목숨도 부지했습니다. 소인을 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다에 동행(同行)했을 테고, 소인은 시지가 멀쩡하니 제물이 되어 지금쯤 고기밥이 되었겠지요.”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요. 삶의 다양한 변수가 인생을 위태롭게도 풍요롭게도 합니다. 인생사 작은 인연(因緣)일지라도 소홀하게 하지 마시기를... 훗날 작은 인연이 큰 덕(德)을 안겨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출처] 미상, '받은 글' 옮겨 적음
/ 2021.01.27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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