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지나가고 떠나가고', '나무는 나무대로', '봄 전갈' 이태수 (2020.12.27)

푸레택 2020. 12. 27. 19:08

■ 지나가고 떠나가고 / 이태수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 나무는 나무로 / 이태수

있는 그대로를 껴안기로 했다 뒤집고
뒤집다가 보면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비껴서 있을 뿐
나무는 나무로, 돌멩이는 돌멩이로,
하늘의 구름은 하늘의
구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가 저만큼 떠나고 있는, 아니면
내가 이 만큼서 서성이고 있는,
그 사이의 바람 소리를, 미세하지만 완강한
이 신음 소리를 껴안기로 했다
이즈음은 물소리나 바람 소리에
귀를 맡기고, 마음을 끼얹고, 숙명과도 같이
내가 택한 이 오솔길을
걷기로 했다. 터덜터덜 걸으며
길가에 피어난 풀꽃이나 버티어선 바위,
돌부리에도 눈길을 주고
오늘의 이 지상,
이 가혹한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떠도는 꿈을 지우며, 때로는
힘겹게 꿈을 돋우어내며
걷기로 했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풀잎은 풀잎으로, 아픔과 슬픔은
아픔과 슬픔으로,
지워질 듯 되살아나는 희망은 차츰씩
보듬어 안기로 했다

■ 봄 전갈 ㅡ2020 대구 통신 / 이태수

오는 봄을 잘 전해 받았습니다
사진으로 맞이할 게 아니라
달려가 맞이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질 나쁜 바이러스 때문에 그럴 수가 없군요
사진 속의 눈새기꽃에 가슴 비비고
너도바람꽃에 마음을 끼얹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금 창살 없는 감옥,
육지에 떠 있는 섬 같습니다
노루귀꽃 현호색 꿩의바람꽃
데리고 오시겠다는 마음만 받겠습니다
안 보아도 벌써 느껴지고 보입니다
소백산 자락에 봄이 오고 있듯이 머지않아
이곳에도 봄이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너도바람꽃이 전하는 말과
눈새기꽃 말에 귀 기울입니다

당신은 괜찮으냐고, 몸조심하라고
안부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런 문자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어서
고맙기는 해도 되레 기분이 야릇해집니다
이곳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집니다
마스크 쓰고 먼 하늘을 쳐다봅니다

오늘도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일 때가 오겠지요
더디게라도 새봄이 오기는 올 테지요

● 올해 '상화시인상'에 이태수 시인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태수 시인이 선정됐다. 이상화기념사업회는 제35회 수상작으로 이태수 시집 '내가 나에게'를 뽑았다고 9일 밝혔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이태수 시인은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등이 있다. 대구시문화상,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을 받았고,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심사위원단은 "시집은 내면을 드러내는 시어가 서정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시적 노력과 주제의식이 서늘한 깊이를 끌고 나간다"고 평했다. ㅡ 연합뉴스 (2020.06.09)

/ 2020.12.27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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