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명작산책] 로댕의 '대성당', 당신의 손 강은교 (2020.12.08)

푸레택 2020. 12. 8. 12:51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대성당'(La Cathédrale, 1908년), 석고 64x34x32cm, 파리(Paris)로뎅박물관, 프랑스
 
1
로댕의 1908년 작품 '대성당'이다. 성당은 보이지 않지만, 성당을 떠올리는 신성한 분위기가 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두 손 모두 오른 쪽 손이다. 그러니까 다른 두 사람의 손이다. 닿을 듯 말 듯한 두 사람의 손 모습은 묘한 아련함을 주고 있다. 서로 잡으려 하지만 닿아있지 않은 손. 보다 보면 저 손이 떨어지면 안되는데 서로 맞잡아야 하는데 하는 느낌이 그냥 든다. 가까이는 갔지만 서로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아직 제대로 닿지 못하는, 그래서 애잔한 우리들의 ‘사랑’과 ‘연대’를 떠올린다.

2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오른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크리스챤의 기도와 공동체 영성의 주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너무도 꾸밈없이 단순한 손을 모으고 있는 틈새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이 검박하면서도 단순한 손은 바로 꾸밈없는 고딕 대성당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담백한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대성당은 어떤 특정 계급에게만 유보된 공간이 아닌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이어서 중세기 대성당을 지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다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의 대성당, 인간의 모든 애환을 다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생을 어머니처럼 안아주시는 성모님의 망토 자락을 붙들 수 있는 곳이기에 대성당은 모든 크리스챤들의 마음의 고향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참으로 자기가 그리던 마음의 고향을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태어나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인간적인 주제를 남긴 그가 실제 삶은 제도적인 교회를 떠난 처지가 되었다. 잦은 여성 편력, 분방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도 그는 대성당에서 만났던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도 잊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에 생애 말년에 이 작품을 남긴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신앙고백이요 확인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인간의 작은 손 두 개가 겹쳐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을 닮은 위대한 창조력의 표현인지 모른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인 손을 도구삼아 여러 좋은 일을 할 수 있기에 인간의 손이 바로 대성당의 상징일 수 있다. “예술이란 인내와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며,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이 이 작품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ㅡ 작은형제회, 이종한 요한 신부의 성화이야기
 
3
더 이상 손은 몸의 한 부분이 아니다. 이 손들은 무엇을 붙잡으려 하는 것일까? 무엇을 어루만지려 하는 것일까?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손들은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살짝 닿아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보면 친밀하게 맞닿아 있다. 저 부유하는 아련한 손들은 시선과 응시라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일체가 되어 있는 동시에, 영원히 합일되지 못할 운명에 대한 암시 같기도 하다. 로댕의 ‘대성당’은 원래 분수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휘어진 활 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오르도록 계획되어 있었던 것. 처음에는 ‘언약의 궤’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나중에는 ‘대성당’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단순한 구성에서 느껴지는 기념비적인 분위기가 성스러운 감정을 갖게 한다는 이유였다.

로댕은 평상시 노트르담 대성당을 고딕예술의 극치로 여겨 흠모했다. 마치 베일처럼 숨어 있는 동시에 드러나는 성당의 분위기를 두 손으로만 표현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성당’은 여자의 손인지 남자의 손인지 불분명한 두 개의 오른손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신에 도달하기 위해 첨탑을 높였던 고딕성당의 교차하는 궁륭의 우아함을 인용하면서 빈 공간을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저 단순하고 조촐한 두 손으로도 고딕성당의 스케일과 스피리추얼리티(spirituality)를 담보할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갑자기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섬세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손으로 형상을 만들어 ‘그림자놀이’ 같은 예술적인 유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얼굴을 어루만져 주거나, 어깨를 꼭 안아 주거나, 등을 쓸어내려 주는 등의 행위들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이런 사소한 행위들이야말로 가장 세심한 치유와 위로의 출발일지도 모른다. 한 해를 보내면서 손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존재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ㅡ 유경희 미술평론가 '유경희의 아트 살롱' / 경향신문

4
결혼식 청첩장에 넣을 이미지를 권해 달라는 친구의 청을 듣고 곧장 오귀스트 로댕의 '대성당'을 떠올렸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대성당'을 처음 접한 뒤로 오랫동안 나는 로댕이 조각한 것이 기도를 위해 막 모아지려는 누군가의 양손이라고 무심코 믿어왔다. 최근에야 '대성당'의 아치가 각기 다른 몸에 속한 오른손, 자세로 미루어 아마도 가까이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의 손으로 이뤄졌음을 알아차렸다. 닿을락 말락한 '대성당'의 두 손은, 남은 생을 공유하기로 결단한 연인에게 선사할만한 이미지다. 손바닥 전체를 깊이 맞댄다면 처음에는 흡족해도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촉감이 둔해지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손을 잡는 행위로 구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결혼을 통해 서로의 몸과 영혼을 구석구석 탐사한 다음, 노년에 이르면 다시 가볍게 손을 잡고 산책하게 되리라.

로댕은 손의 위대한 감식자이자 창조자였다. 한때 그의 비서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작업장의 무수한 손 조각들을 가리켜 “어떤 손은 걷고 있고, 어떤 손은 자고 있으며, 어떤 손은 깨어 있다”고 묘사했다. 교회와 성당의 건축 양식을 깊이 탐구했던 로댕이 특별히 이 작품을 '대성당'으로 명명하기로 한 결정은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달걀 한알을 쥘 만한 압력도 들어가지 않은 관절이 그리는 우아한 아치, 그 아래 깃들어 있는 균형과 겸허, 고양감과 한없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로댕이 발견한 고딕 양식이 지닌 아름다움의 요체가 아니었을까.

위대한 예술가의 비전을 갖지 못한 평범한 우리에게도 손은 충분히 성스러운 기관이다. 손은 두뇌와 더불어 인간에게 신을 흉내내는 행위를 허락한다. 손가락을 모으면 사물을 담을 수 있는 조그만 그릇이 되고, 활짝 펴면 가지가 되어 우리를 통과하는 세상의 바람을 느끼게 한다. 손은 어떤 신체 부위보다 빨리 굳고 주름져 노화를 드러내지만, 끝내는 시력과 청력이 떠나간 뒤에도 우리 곁에 남아 세상의 홈과 마디를 촉지하게 해 줄 것이다. 술이든 음악이든 우리가 무언가에 깊이 취했을 때 타인의 손을 가만히 잡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을 영접한 순간 성소에 들어가고 싶은 본능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정념이 질료 덩어리 속에서 거의 뛰쳐나오려 하는 로댕의 관능적인 전신상들에 비해 '대성당'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대성당'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소박한 조각이 다양한 앵글과 빛의 상태에 따라 얼마나 상이한 노래를 부르는지 알게 된다. 훌륭한 건축물이 그렇듯이 '대성당'은 모든 면(面)을 통해 호흡한다. 미술비평가 베르나르 상파뉠르는, 로댕이 인간의 얼굴에 미소를 조각한 적이 없다고 썼다. 그러나 '대성당'의 손은 분명히 미소짓고 있다. ㅡ 김혜리 (2010.03.26) 씨네21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성스러운 미소를 담은 손, 로댕의 '대성당'

■ 당신의 손 / 강은교

당신이 내게 손을 내미네
당신의 손은 물결처럼 가벼우네

당신의 손이 나를 짚어 보네
흐린 구름 앉아 있는
이마의 구석구석과
안개 뭉게뭉게 흐르는
가슴의 잿빛 사슬들과
언제나 어둠의 젖꼭지 빨아 대는
입술의 검은 온도를...

당신의 손은 물결처럼 가볍지만,
아, 당신의 손은 산맥처럼 무거우네
당신의 손은 겨울처럼 차겁지만,
아, 당신의 손은 여름처럼 뜨거우네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이 슬픔의 살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기쁨의 살이 되네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당신이 내게 손을 내미네
물결처럼 가벼운 손을 내미네
산맥처럼 무거운 손을 내미네

/ 2020.12.08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