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칼럼]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조홍섭 (2020.12.05)

푸레택 2020. 12. 5. 17:40



■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 조홍섭

새들의 짝짓기 행동은 허무할 정도로 짧다. 수컷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껏 춤과 노래를 뽐내고 먹이까지 갖다 바치면서 정성을 다하기도 하지만, 정작 정자를 암컷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순식간에 끝난다. 이것은 새들의 독특한 해부학적 구조 때문이다. 배설과 생식기능을 나누지 않고 총배설강에서 모두 담당하는데, 새들의 교미는 암수가 총배설강을 열어 서로 접촉하고 그 순간 수컷이 사정하는 것이 전부이다.

동물 진화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의 하나는 대부분의 새 수컷에게 생식기가 없거나 아주 작게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돌출한 생식기는 정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조류의 97퍼센트인 약 1만 종의 수컷에게서 외부 생식기가 사실상 없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과 영국 연구자들이 이런 의문을 발달 단계에서 해명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대부분의 새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는 완전히 퇴화했다. 닭, 메추라기, 꿩 등의 육상조류는 수컷의 생식기가 축소돼 흔적만 남아 있다. 반면 육상조류와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오리, 고니, 거위 등 물새류 수컷은 생식기가 완전하게 발달해 있다. 또 에뮤, 타조, 키위 등 일찍 분화된 집단도 잘 발달한 수컷 생식기를 지닌다.

연구진은 수정란인 달걀과 오리알이 발달하는 과정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닭이나 오리나 나중에 생식기로 자라날 부위가 처음에는 똑같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식기의 ‘싹’이 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만 닭은 며칠 안에 성장을 멈추고 곧 사라져버린다. 연구진은 처음 생식기를 발달시키는 무언가가 오리에게는 있고 닭에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떤 단백질이 닭에게만 ‘죽음의 신호’를 내보냈던 것이다. 연구진은 그것이 뼈 형성 단백질4(BMP4)임을 밝혔다. 이 단백질은 ‘세포 죽음[아포토시스(apoptosis)]’을 일으키는 인자로 작용해, 나중에 생식기로 자랄 세포가 자살하도록 이끌었다. 실험에서 이 인자의 세례를 받은 오리의 알에선 생식기가 자라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수탉의 생식기가 ‘어떻게’ 축소됐는지는 밝혀졌지만 ‘왜’ 그런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선 여러 가설이 있다. 암탉이 생식기가 작은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수컷에 대한 통제력을 높였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돌출한 생식기가 없는 새들은 ‘배설강 키스’라 불리는 교미행동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배설강을 맞대고 정액을 전달하는 짧고 어설픈 동작이다. 이 경우 효과적인 짝짓기를 위해선 암컷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반면 돌출된 생식기를 지닌 오리는 암컷의 협조가 필요 없다. 일부 오리는 자기 몸보다 긴 생식기를 지녔는데, 원하지 않는 암컷에게 교미를 강제하기도 한다. 이런 성 선택 가설 말고, 생식기의 축소가 새들이 진화하면서 몸에 일어난 변화의 하나라는 가설도 있다. 특히 깃털 형성, 이빨 상실, 부리 형성은 새들의 주요한 특징인데, 모두 단백질4와 관련이 있다. 결국 3퍼센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하늘을 나는 월등한 변화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를 잃었다는 설명이다.

오리뿐 아니라 타조, 에뮤, 레아, 키위 등 날개가 퇴화해 땅에 사는 일부 새들도 음경을 갖고 있다. 동물원에서 타조를 구경하다가는 민망한 광경을 보기 십상이다. 타조 수컷에게는 다른 새들과 달리 음경이 있으며, 그것도 아주 크다. 서울동물원 사육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수컷 타조의 음경은 길이가 30센티미터가량인데 짝짓기를 할 때뿐 아니라 배설을 할 때도 총배설강이 뒤집히며 휘어져 삐져나온다. 그러나 교미시간은 다른 조류처럼 매우 짧다.

왜 이들에게만 음경이 있을까. 그리고 이들과 파충류나 포유류의 음경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질문이 처음 나온 것은 1836년이었다. 독일의 한 과학자는 타조의 음경도 다른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혈관이 확장하면서 발기한다고 보았다. 다른 견해도 있었지만 이 문제는 이후 170년 가까이 별도의 확인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2011년 미국 연구자들이 수컷 타조와 에뮤를 해부한 결과 생식기 바로 밑에 스펀지 모양의 림프 생성 조직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오랜 믿음이 깨졌다. 타조 등은 음경이 혈액 아닌 림프에 의해 발기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림프는 혈액과 함께 동물의 주요한 체액으로, 노폐물의 제거와 면역세포의 전달 등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번 발견은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타조, 에뮤, 오리 등 일부 조류가 모두 림프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이들의 공통 조상이 혈액 발기에서 림프 발기로 진화적 전환을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부 새들이 혈관을 팽창시켜 발기를 하는 척추동물과 구조는 동일하면서도 혈액 대신 림프를 쓰도록 진화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2009년 림프 음경을 지닌 오리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 거기서 답을 끌어낼 수 있다. 오리 수컷의 음경은 길이가 40센티미터에 이르며 나선형으로 꼬인 형태인데, 실험결과 20센티미터 길이로 발기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연구자는 강압적으로 짝짓기를 하려는 수컷과, 원치 않는 교미를 피하려는 암컷 사이의 ‘성 전쟁’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았다. 림프는 혈액보다 빠른 발기와 깊은 사정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2013)

/ 2020.12.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