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꽃 /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김준태, '감꽃' 전문
남도의 키 크고 눈매 선한 이 시인은 역사를 천형처럼 짊어지고 시를 토해낸다. 그에게는 시를 쓰는 일과 역사를 인식하는 일이 한 몸이다. 보라, 빙빙 꼬아 둘러갈 것 없이 한걸음에 수십 년의 시간을 내달리는 것을, 단 넉 줄의 시에 영욕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가 가차없이 압축되어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딱딱한 시간 구조가 '세다'라는 동사에 실려 명료하게 우리를 찌른다. 여기서 누가 아프지 않겠는가. 여기서 누가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겠는가. 한때는 살육의 전쟁을 수행했고, 지금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럽지 않은가. 특히 마지막 줄을 읽으며 당신과 나는 오래 침묵해야 한다. 당신, 그리고 나는 먼 훗날에 과연 무엇을 세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볼 것인가?
[출처]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이가서, 2013)
/ 2020.11.17(화) 택..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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