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함께 가을 익어가는 숲길을 걸어요
(마곡 서울식물원의 가을풍경을 담아 보내는 편지)
벗이여, 추명국(秋明菊, 待霜花)과 버들마편초 꽃 피어나고 윤노리나무 열매 곱게 익어가는 가을입니다. 오늘은 마곡 서울식물원을 찾아 꽃과 열매와 단풍이 함께 어우러진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맑은 하늘과 호수, 아름다운 단풍과 열매를 벗 삼아 걸으니 천상을 거니는 듯 마음이 두둥실 떠 다닙니다.
숲길 걸으며 잠시나마 세상 살아가는 일, 근심 걱정 내려놓고 내 마음 바람 되어 어디론가 흘러가고 뭉게구름 되어 정처없이 떠 다니고 싶어집니다. 나는 타다 못해 지는 낙엽이 되어도 보고 풀잎 끝에 머무르는 따사로운 햇살도 되어 봅니다. 가을은 그리운 것들을 더욱 그립게 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벗이여, 우울한 기분이 들 땐 우리 함께 산책길에 나섭시다. 어느 철학자는 '모드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장소와 시간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죠. 산책은 장소를 바꿔 모드를 전환하는 것이겠지요. 인류의 오랜 진화 기간 동안 자연환경에서 보낸 우리 인간에겐 바이오필리아(bio philia)가 있다고 합니다.
바이오필리아란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학설로 자연의 장소와 소리를 선호하고 다른 생물에게 호기심을 갖거나 끌리거나 최소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선천적인 성향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마음이 지칠 때 우리의 발걸음이 숲으로 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겁니다.
요즈음 코비드19로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벗이여, 우리 녹색의 향연 숲을 찾아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봅시다. 우리가 녹색공간에 많이 노출될수록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가 완화되고 면역력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또한 공격성이 감소하고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항암효과까지 증가한다고 하니 녹색길 산책보다 더 좋은 건강 비결은 없나 봅니다. 벗이여, 우리 만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숲길 산책을 합시다.
벗이여, 코스모스꽃 피어나고 복자기나무 잎새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입니다. 이런 가을날엔 박목월 시인의 '이별의 노래'를 불러 봅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러고는 도종환 님의 '단풍 드는 날'을 읊으며 무거운 짐 내려놓고 황홀한 빛깔로 물들고 싶어집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벗이여, 우리 우울한 마음에서 깨어나서 푸른 물가 한잎 두잎 낙엽이 지고 들리나니 개울물 소리뿐인 숲으로 갑시다. 머나먼 길 떠나온 나그네 마음, 소슬한 바람결에 이 내 맘 뛰는 이 계절엔 우리 숲으로 갑시다. 낙엽지는 숲이 우리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내게 오라고 숲은 저리도 우리를 부르는데, 내게로 오라고 단풍은 저리도 우리에게 손짓하는데 왜 머뭇거리시는지요?
벗이여! 우리 빛나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한 번 뿐인 인생,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갑시다. 지나간 날에 대한 회한(悔恨)은 훌훌 털어버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떨쳐버리고 우리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갑시다. 미국의 어느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다른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흉내내 사는 것보다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더 낫다.'(Elizabeth Gilbert). 벗이여, 살아있음이 매 순간이 기적임을. 고맙고 감사할 뿐.
ㅡ 마곡 서울식물원에서 보내는 가을 편지
/ 2020.10.17 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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