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아지풀과 함께
우리 집에서 교회를 오가는 길목에 강아지풀이 한창입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인도(人道)와 길가의 주차장 벽 틈새에 강아지풀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흩날립니다.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날아와서 그 틈새에 뿌리를 내렸을까요! 참 기특합니다. 고맙습니다. ‘강아지풀’, 그 이름 한번 잘 지었습니다. 영락없는 강아지풀입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강아지털 마냥 부드럽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잎’(?)은 꼭 강아지 꼬리를 닮았습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모님께서 사시는데, 얼마 전 우리 집을 다녀가실 때, 강아지 풀을 하나 손에 꺾어 들고 오셨더랬습니다. 그래요. 바로 그것입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강아지풀 하나 꺾어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작은 여유,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런 작은 여유만 가져도,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을 그런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게 인생의 지혜입니다.
아주 오래전, 학교 다닐 때 “시인(詩人)은 어떤 사람인가”, 즉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골에 살고 있는 아낙네가 설거지물을 버리기 위해서 부엌문을 열고 나설 때, 문득 피어 있는 꽃들을 발견하고는, ‘어, 꽃이 피었네’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 아낙네가 곧 훌륭한 시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깊은 공감이 가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시인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시인입니다. 시심(詩心)은 그런 것이지요. 길가의 보잘 것 없는 꽃 하나를 보고 문득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시인이며, 그런 시심을 가진 사람은 험난한 세상을 넉넉하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의 작은 관심이 거대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는 청소년들을 위로하는 명언 중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말이 있었지요? 그렇지요. 가끔이라도 하늘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뚫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하늘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명언과 아울러서, “그래, 가끔 들꽃을 보자”라는 유사품의 명언(?)도 말하고 싶네요.
온 나라가 찜통더위로 푹푹찌지만, 대지에는 사랑스러운 강아지풀이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들꽃을 찬찬히 보노라면, 세상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8월을 맞이하면서 ‘강아지풀과 함께’ 라는 시을 골라봤습니다.
독자 여러분 여러모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 강아지풀과 함께 / 최종국
깜장 박쥐우산 쓰고
강변 둑에 쪼그려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물가의 강아지풀
저도 같이 본다
강물은
곁눈질도 없이 제 길을 간다
천수답 봇도랑처럼 비루하지 않고
호수처럼 죽은 듯이 게으르지 않고
돌각사리 시내처럼 촐랑거리지 않고
바다처럼 지루하게 일렁이지 않고
계곡처럼 소리치지도 굽이치지도 않고
폭포처럼 기세를 부리지도 몸을 던지지도 않으면서
어쩌면 그리 유유하고 기품 있게 가는지
비로 살진 강은 장엄하기조차 하다
넉넉해질 일이다
강 같은 사유와
물 같은 깊이로 다스릴 일이다
강아지풀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다
[출처] 2010년 8월호 말숨편지
/ 2020.08.04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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