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아리 메아리 / 조정래
“작은아버지, 저 결혼하게 됐어요.”
조카딸 인희가 커피잔을 들어올리며 담담하게 말했을 때 나는 문득, 아, 네가 벌써... 하는 영탄조의 말을 흘릴 뻔했다. 그러나 나는 용케도 그 말을 삼킴으로써 작은아버지로서의 체면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나는 조카딸 인희가 스물아홉 살이라는 사실을 무슨 계시처럼 떠올렸던 것이고, 그 나이에 비해 나의 영탄조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를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그건 아버지 없이 자란 조카딸에 대한 나의 평소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었다. 내 영탄조가 제대로 어울리려면 인희가 결혼적령기인 사오 년 전에 시집을 갔어야 했을 것이다.
“작은아버지, 결혼식날 저를 좀 예식장으로 데리고 들어가주세요. 아빠가 아직 안 돌아오셨으니...”
두 손으로 받쳐든 커피잔에 눈길을 담근 채 인희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전신에 끼쳐오는 소름을 느꼈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지.”
나는 소름의 섬뜩한 기운을 털어내듯 필요 이상 큰소리로 말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인희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다.
인희는 목소리만큼 담담한 표정일 뿐이었다. 아빠가 아직 안 돌아오셨으니... 인희는 마치 제 아버지가 어느 외국에라도 나가서 시일에 맞춰 돌아올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이십구 년 동안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는 그 담담함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조카딸의 모습은 바로 형수의 모습이었다. 남편의 생존을 확신하고 있는 형수의 신념이 그대로 조카딸에게까지 전이된 것이었다. 그 누구도 형수의 지치거나 시들 줄 모르는 신념을 허황하다거나 부질없는 짓이라고 만류할 수 없듯이, 조카딸의 그런 모습을 대하고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형을 많이 닮았으면서도 형수의 우울한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는 인희의 얼굴에서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내가 느낀 섬뜩한 기분은 가시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희의 뜻밖의 말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괴기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형수가 풍기는 냄새인 동시에 형수가 즐겨 찾아다니는 무당의 울긋불긋한 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물씬물씬 풍겨나는 그 음산하고 칙칙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배웠다는 너까지... 나는 인희에 대한 실망스러움을 씹다가 내가 큰 착각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형수가 남편의 생존을 확신하는 것은 무당의 점괘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근거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었다. 세금고지서처럼 전사통지서가 예사로 배달되던 그 시절에 우리 집으로는 분명 형의 전사통지서가 배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확실하고도 분명한 근거 위에 형수의 신념은 뿌리발을 한 것이고, 무당은 형수가 그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게 옆에서 응원의 북을 울려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벼운 나들이에서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여기고 있는 인희의 믿음도 바로 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었다. 누가 감히 그 믿음의 근거를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안에는 금기사항이 한 가지 있었다. 형의 생존에 대해서 회의하거나 부정적인 그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금기사항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 지켜져왔다. 우리 집안에서는 국립묘지에 드높게 솟아 어느 나라의 대표의 절이든 제일 먼저 받는 ‘무명용사의 탑’의 존재를 한사코 외면해온 셈이었다.
“저 그만 가보겠어요.”
인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손까지 저어대며 말하면서도, 막상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지 나 스스로도 요령부득이었다.
“그래, 그런데, 신랑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는 허둥지둥 생각을 간추려 겨우 이 말을 찾아냈다.
“오늘 함께 오려고 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어요. 이삼일 후에 인사드리러 오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인희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 어색한 느낌의 웃음은 어머니의 그늘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나는 인희가 앉았다 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답답했기 때문에 더 처연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조카딸의 모습 위에 형의 얼굴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 옆에 아버지의 얼굴이 나란히 놓였다.
나하고는 아홉 살 터울인 형이 판검사라는 으스스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일본으로 공부를 떠난 것은 내가 소학교 사학년 때였다.
“돈은 얼마든지 풍족하게 대줄 테니 너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판검사 나으리가 돼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이 애비는 천하를 다 얻는 것이나 진배없다.”
아버지가 몇 번이고 형에게 당부한 말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대주겠다는 아버지의 장담처럼 우리 집은 부자였다. 사리원에서 일본 사람 것을 빼놓고는 두 번째로 큰 포목점의 주인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포목점에서 벌어들이는 돈 말고도 우리 집에는 논도 많았다. 아버지는 포목점을 언제나 그만한 크기로 운영하면서 거기서 번 돈으로 논을 사들이고는 했다.
“요런 멍텅구리 같은 여편네야, 누가 손님 놓치는 것이 아깝지 않구, 점방 늘릴 줄 몰라서 안 늘리는 줄 아냐니까. 까짓 미시마 같은 쪽바리놈 점방보다 몇 배 크게 늘리기는 찬밥 상추쌈 해서 넘기기보다 쉬운 일이야. 허나 세상을 알아야지, 세상을. 이등 자리만 착실히 지키면서 땅만 늘궈가는 거야. 세상이 제아무리 험하게 바뀌어도 땅만은 요동을 안하는 법이니까.”
물건 구색이 맞지 않아 어쩌다 손님을 놓치게 되면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점포를 늘리자고 안달이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똑같은 말로 어머니의 요구를 묵살해버리고는 했다.
내 위로 두 누나는 소학교까지만 마치고 집안일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 둘이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툴툴거렸고, 어머니 눈을 피해 바가지를 내동댕이치기가 일쑤였다. 돈이 많으면서도 상급학교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계집이 언문 깨쳤으면 됐지 더 배워 뭘 해. 계집들이 식자 들면 팔자 사나워진다. 집안일 익혀 시집이나 갈 채비 해.”
아버지의 이 한 마디 호령으로 누나들은 꼼짝없이 일구덩이에 빠지고 만 것이다.
형이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경찰서를 통해서 집에 전해진 것은 오월이었다.
“아이쿠,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인자 우리 집안 망했다, 망했어. 이 일을 어째야 좋으냐.”
아버지는 가게의 마룻장을 손바닥으로 치며 황소울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눈물 안 나오는 통곡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통곡은 오래 계속될 수 없었다. 눈꼬리 치세운 형사를 따라 경찰서로 끌려가야 했다. 형사는 형의 소식을 전해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형 때문에 아버지를 붙들려고 온 것이었다. 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독립운동을 한 형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는 엇갈리는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긴 겨울방학 내내 책만 읽다가 삼월이 되어 형은 그 멋드러진 사각모 차림을 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형은 일본에 가 있었던 지난 일 년 동안에 꼭 아버지와 같은 어른으로 변해버렸고, 더욱 말이 없어져서 나는 형을 대하기가 아버지보다 더 어려웠다. 이학년의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떠나는 형을 나는 부러운 눈으로 언제까지나 바라보았을 뿐 그 형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막연하게나마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훌륭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형이 바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감격스러움에 혼자 떨었다.
아버지는 서너 차례나 더 경찰서에 불려다녔다.
“멍청한 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꺼떡대, 꺼떡대길. 불효자식 같으니라구. 애비 속도 모르구.”
아버지는 전에 없이 자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형을 향해 끝없이 욕을 해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내며 한숨만 쉬었다.
“잔소리 말어, 그런 놈 옥바라지 허자고 뼈빠지게 돈 번 거 아니야. 다시 그 따위 넋나간 짓 못 하게 이번에 톡톡히 고생을 해야 돼.”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어머니를 향해 이런 말을 벌써 몇 번인가 외쳐댔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주눅든 몸짓을 지으며 눈물만 훔쳤다.
형이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바람이 몹시 불던 십이월 어느 날이었다.
“너 이놈, 방으로 들어오지 말고 거기 그대로 섰거라.”
역으로 마중을 나갔던 어머니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는 형에게 아버지가 외친 호령이었다.
“영감, 왜 그러시오, 왜.”
어머니가 겁에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임자는 저리 비켜!”
마루로 내려서고 있는 아버지의 손에는 지겟작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건 아까부터 기둥 옆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놈아, 애비 말 거역하고 독립운동인가 지랄인가에 가담했으면 그걸로 나가 뒈지고 말 일이지, 집구석에는 뭐하러 기어 들어와. 요런 미련하고 바보 멍청이 같은 놈아.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감히 니놈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나서, 나서길. 대일본제국은 호랑이고 네까짓 놈은 그 앞에서 생쥐새끼도 못 돼. 어딜 감히 덤벼들어, 천치같은 놈아. 니놈은 내 자식이 아냐. 나가 죽어라, 죽어.”
아버지는 소리소리 지르며 지겟작대기로 형의 등줄기를 후려치고 있었다. 형은 눈을 꼭 감은 채 그 매를 견디고 있었다.
“차라리 날 죽이시오, 날 죽여.”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와 형 사이로 뛰어들어 형을 싸잡았다.
“못된 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지겟작대기를 높게 치켜든 아버지의 팔이 거센 바람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짚더미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미련한 놈!”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를 내던지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한 아버지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형은 매일 방에 누워서 지냈다. 집안에는 한약 달이는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고, 형은 한약을 마시고는 밤낮없이 시름시름 잠만 잤다.
“얼마나 매타작을 무작스리 했으면 젊은 삭신이 저리 골병이 들었을꼬.”
어머니는 가게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약탕관을 지키고 앉아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리고는 했다. 나는 어머니한테 묻지 않고서도 형의 골병이 아버지한테 맞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일본놈들한테 맞아서 생긴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붙어앉았다가 내 손으로 약사발을 갖다주려고 애썼다. 형은 약사발을 받아들면서도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물론 입을 열지도 않았다. 나는 형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다가 빈 사발을 들고 나오곤 했다.
형은 닷새쯤 지나면서부터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기도 했고, 머리맡에는 책이 펼쳐져 있기도 했던 것이다.
“상균이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형이 약사발을 받아들며 마침내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나는 형이 약을 다 마시기를 기다리며 무릎을 바짝 붙이고 앉아 있었다. 형이 빈 사발을 방바닥에 놓으며 손바닥으로 입술을 훔쳤다.
“형.”
나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생각과는 달리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이다. 나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고, 형은 대답 대신 왜 그러느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저어... 저어...”
“괜찮아,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아.”
형이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조용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웃음, 예상 외로 뜨겁게 느껴졌던 손길은 형을 회상하는 내 기억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선명한 한 장의 사진이 되었다.
“저어... 형이 정말 독립운동했어? 독립운동은 어떻게 하는건데?”
나는 용기를 얻어 빠르게 물었다.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속삭이듯이 낮아져 있었다.
형은 한참 동안이나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형의 그 눈길은 여름 한낮의 햇살보다 더 눈이 부셨다.
“일본놈들이 그렇게 만든 거지.”
형은 고개를 떨구며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형은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었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부끄럽구나.”
형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본 채 탄식하듯 말했다.
“상균아, 너는 좀더 커야 알 수 있다. 그만 나가 놀아라.”
형은 다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는데, 그 얼굴이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무섭게 보였다.
나는 쫓기듯 형의 방을 나오며 마루가 출렁이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형이 내 형 같지가 않고 생판 남같이 멀게 느껴졌던 것이다. 형이 말했던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윤곽을 잡은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임시였다.
경찰에서는 형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학도병을 지원하라고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감, 돈 어디다 쓸려고 벌었어요. 자식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잖아요.”
어머니는 목소리를 낮춰가며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쓸데없는 소리. 지놈이 긁어 덧낸 부스럼이야. 정신대 피해 딸년 시집 서둘러 보내는 것하고 학병 나가는 문제하고는 달라.”
아버지는 매정하게 어머니의 애원을 뿌리쳐 버리고는 했다.
“상섭아, 도망을 쳐라. 만주로든 깊은 산중으로든 도망을 쳐. 학병 끌려갔다간 다 죽는다는데.”
아버지를 설득하기 전에 지친 어머니는 이제 형을 붙들고 애가 탔다.
“어머니, 도망친다고 끝날 일이 아녜요. 다 제가 알아서 할테니 염려 마세요.”
형은 입가에 웃음기까지 띠며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은 그 태연함 속에 무슨 묘방을 감추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형은 제 발로 경찰서에 가서 학병자원서를 쓴 것이었다. 도망을 치라는 어머니의 단순함에 비해 형의 그 결정은 어쩌면 묘방 중의 묘방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이 아까워 자식을 사지로 보내다니, 당신도 사람이요, 사람?”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통곡을 했다.
“저, 저, 저놈의 주둥아리! 박살을 내기 전에 닥치고 있어!”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며 정말 어머니를 박살낼 것처럼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버지는 버릇처럼, 자기는 무식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곤 했는데, 정말 그때처럼 아버지가 무식해 보이고 무지막지한 짐승처럼 보인 때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예 아버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형이 학병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체념을 했는지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천인침을 만들기 위해 이집 저집을 정신없이 쏘다녔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제일 좋은 비단을 골라 거기에 무운장구라고 한자로 쓰고는 한 사람에게 한 땀씩 뜨게 해서 네 글자를 수놓아 가는 힘겨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천 사람의 정성을 모은 그 부적을 몸에 지니면 사지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해내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눈은 줄곧 벌겋게 울고 있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한시라도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명심해, 알겠지야?”
어머니는 형이 떠나는 날 아침에 천인침을 형의 주머니에 넣어 꼭꼭 누르며 애가 달았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형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총알을 피해 다니도록 하거라. 그럼 아무 탈 없다.”
하, 참으로 무식하고도 무식한 아버지의 말이었다. 사람보다 수백 배 빠른 총알을 형이 어떻게 피할 것인가. 소학생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어른인 아버지가 모르다니.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무식한 줄은 몰랐고, 그것이 창피한 것인 줄도 모르고 그런 무식한 말을 큰소리로 하는 뻔뻔스러움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무식한 아버지가 어떻게 돈 하나는 기막히게 잘 벌고, 주판도 없이 돈 계산만은 귀신같이 빨리 해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신대를 피해 부랴부랴 시집을 갔던 큰누나가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지만 형한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집집마다 놋그릇이란 놋그릇은 다 공출당하고 있었고, 쇠로 단 다리의 난간까지 뜯어갔다.
천인침 덕분이었을까, 총알을 피해다녔기 때문일까. 형이 성한 몸으로 무사하게 돌아온 것은 해방이 된 해 10월이었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 허망하게 망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니까.”
일본이 망한 것이 못내 아쉽기라도 한 듯이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혼자 중얼거리고는 했다. 아버지는 해방이 하나도 기쁜 것 같지가 않았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이제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포목점을 마음껏 늘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해방을 기뻐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버지의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영감, 점방부터 크게크게 늘립시다.”
해방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며 두 번째로 한 말이었다. 첫 번째 말은 물론, 내 아들 상섭이가 돌아오겠구나, 하는 목메인 말이었다.
“암탉이, 암탉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친 말이었다. 어머니는 정말 기죽은 암탉이 되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놈의 세상이... 이놈의 세상이...”
아버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담배만 빡빡 빨아대며 가게 유리문 밖을 찬찬히 내다보고는 했다.
소련군이 밀어닥치면서 세상에는 이상한 소문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부자나 가난뱅이의 차등이 없이 모두 똑같이 사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세상을 소련군이 만들어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평양 나들이를 뻔질나게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가게 물건을 해오는 것도 아니었다. 형이 돌아온 것은 그 즈음이었다.
“고생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형에게 아버지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형은 사흘 동안이나 밥만 먹고 잠만 잤다. 그러나 독립운동 사건 때처럼 한약을 달여먹지는 않았다. 몸이 허해졌을 테니 보를 해야 한다며 어머니는 한약을 먹이려고 안달이었지만 형은 굳이 마다고 했다.
형이 긴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좀이 쑤시게 궁금한 그 희한한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 비루마에서 싸운 일본군들이 너무 배가 고파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데 그게 참말이야?”
나는 하마터면 ‘그게 참말이야?’하는 대목을 ‘형도 사람고기 먹었어?’할 뻔했다.
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왜, 너도 사람고기 먹어보고 싶으냐?”
이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고, 사람의 팔다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지는 끔찍한 상상과 그것이 내 입으로 들어온다는 몸서리쳐짐과 함께 토악질을 시작했다. 나는 매운 눈물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아침 먹은 것을 다 토해내야 했다. 형이 그때처럼 밉고 야속한 때는 없었다.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형은 매일 바쁘게 나다녔다. 그런 형은 여느 때 없이 생기나 보이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난리판이 벌어진 것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상섭이 너 이놈, 니놈이 이 애비 때려잡는 선봉장 섰다며? 요런 죽일놈아, 당장 나와라. 니놈이 비싼 밥 먹고 헛지랄 못하고 다니게 두 다리를 뚝뚝 부러뜨려줄 테니까.”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사건 때보다도 몇 갑절 화가 나 있었고, 손에는 지겟작대기가 아닌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형은 그때처럼 아버지의 매질을 당하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몽둥이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잽싸게 몽둥이를 낚아채고 말았다.
“아니, 요놈이 인자 뒈질라고 환장을 했냐. 애비한테 덤비기까지 해?”
몽둥이를 빼앗긴 아버지는 자기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아버지가 저를 팬다고 제가 그 일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새 시대를 위해 꼭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형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일이란 공산주의 운동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저놈이 우리 집안 다 망치네.”
아버지는 갑자기 힘이 빠지는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마루로 가 걸터앉았다.
“내가 미친 놈이다, 내가 미친 놈. 소학교만 마치고 장사나 가르쳐야 하는 건데 판검사 바랜 내가 미친 놈이다. 집안 번창시킬 판검사되는 공부하라고 금싸라기 같은 돈 댔더니 저놈이 집안 망칠 공산당 공부를 하다니. 이놈아, 이 정신나간 놈아, 우리 집 재산이 어떻게 모아진 것인지나 알고 니놈이 날뛰냐. 할아부지, 그 위 증조할아부지, 그 위 고조할아부지, 나까지 사대에 걸쳐서 푼푼이 모은 것이 지금 재산이다. 이놈아, 대대로 어깨가 녹아내리도록 등짐을 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산넘고 강건너 보부상 노릇을 해서 씨를 틔운 재산이다, 이 넋나간 놈아. 니놈 할아부지께서 워낙 실하셔서 터 잡을 목돈을 남기셨고, 나는 그걸 밑천으로 오늘 같은 재산을 만드느라고 어떤 고생을 한 줄이나 아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니놈을 판검사 만들려고 했던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냐. 니놈이 애비 망치고 집안 망치는 선봉장으로 나서? 에라, 죽어도 고이 못 죽을 놈아.”
한숨을 토해낸 아버지는 냉수를 가져오라고 소리 질렀고, 형은 장승처럼 어둠이 깔려오는 마당 가운데 서 있었다.
우리 집의 재산을 남김없이 몰수당하게 될 때까지 몇 개월 동안 집안은 거의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아버지와 형 사이에 말다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쨌든 공산주의를 버리라고 형에게 성화였고, 형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서는 지루한 싸움이었다. 아버지의 독기는 이미 소문난 것이었지만 거기에 맞서는 형의 끈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재산을 다 빼앗긴 아버지는 세상 살맛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형 덕분에 집까지 빼앗기지 않은 우리 집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다른 부자들이나 지주들은 어제까지의 하인이나 소작인에게 안채를 내주고 사랑방살이를 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더 심한 경우에는 친일이니 반동이니 하는 죄목으로 어디론지 끌려가고 말았다. 그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체제의 사회에서나 기필코 거쳐야 하는 역사의 순리이고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었다.
“그래, 공산주의도 사람 사는 세상일 테니 어디 살아보자.”
언제까지 맥을 빼고 있을 수 없다는 듯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한 말이었다. 아버지의 그 말 한 마디는 마치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불꽃처럼 식구들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그런데 집안에 불행이 닥쳤다. 형이 보안서에 잡혀들어간 것이다. 회의를 하다가 논쟁이 벌어져 형이 상대방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머리를 맞은 사람이 크게 다쳤다는 것이었다.
“모자라는 놈, 공산주의에 붙기로 했으면 좀 마땅찮은 일이 있어도 주둥아리 딱 닥치고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끝장을 봤어야지. 지놈이 뭐라고 주둥아리를 놀려, 모자라는 놈. 모자라는 놈.”
사건 진상을 수소문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장탄식을 했다.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형이 한 말이 문제가 되어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만약 형이 한 말이 ‘반동적 발언’으로 결정되면 형의 앞날은 캄캄해지는 모양이었다.
닷새가 지나도 형은 풀려나지 않았고, 또 초조한 며칠이 지나 우리 집에 들이닥친 것은 형이 아니라 보안서원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형이 돌아오기까지 일 년 동안 움막 같은 집에서 우리 식구들이 겪은 고생은 흑심한 것이었다. 식량 배급표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누나까지 작업장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래도 식구들은 배고픔을 면할 수가 없었다. 식구들은 그 누구도 고생을 힘들어 하지 않고 형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형은 몰라볼 정도로 여위어 있었다.
“상섭아, 너 아직도 공산주의가 좋으냐?”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형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무라자는 것이 아니다.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라.”
“아버지 마음과 똑같아요.”
형은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그래!”
아버지가 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뜨자, 이남으로.”
아버지가 느닷없이 말했고, 식구들은 일제히 문 쪽으로 시선을 꽂았다. 방 안은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
“그러지요.”
마침내 형이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 사이에서 이렇게 쉽게 의견일치가 된 것은 두 분의 생애 중에 처음이고 마지막 일이었다.
“언제 뜨나요.”
“내일 밤 이맘때 당장.”
“빠른 건 좋지만 준비가...”
“다 애비한테 맡겨라.”
다음날은 다른 식구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냈고, 아버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작업장에 나가지 않고 어딘가를 다녀왔다. 이른 저녁을 해먹은 우리 식구들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집을 나섰다.
우리는 이틀밤을 꼬박 걸어 해주가 가까운 해변에 다다랐고, 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허리춤에서 꺼내 뱃사람에게 준 것은 돈이 아니라 금덩이였다.
“육지로 삼팔선을 넘자면 경비가 심해 위험하고, 안내하는 길잡이 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놈들한테 속아 돈 털리고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이야.”
식욕 좋게 국밥을 먹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허리에서 풀어놓은 전대 속의 금덩이들을 구경한 것은 서울의 여관방에서였다.
“이게 있으니 타향이라고 기죽지 말고 모두 힘내서 살아보자.”
아버지가 엄지손가락만한 금덩이들을 손아귀에 몰아잡으며 기운차게 말했다.
“헌데 이 금덩이들은 언제 다 모은 거요?”
흡족한 웃음을 머금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고, 그걸 어머니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우리들도 아버지를 일제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임자, 내가 평양 걸음 자주 할 때 거기다 첩이라도 뒀냐고 투정했었지? 그때 바로 이것들을 구해 모았던 게야.”
“영감 참 용하시오. 세상 바뀔지 어찌 아셨소, 그래.”
“허, 말 말어. 내가 조금만 덜 무식했더라도 그 아까운 재산 그리 억울하게 뺏기지 않고 반 이상은 건졌을 게야. 무식하다보니 이 세상에 공산주의라는 것이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살았고, 노스께놈들이 밀어닥쳐서야 손을 썼으니 이 꼴밖에 안됐지.”
“아녜요. 이만큼 건진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어머니는 두 손으로 금덩이들을 어루만졌고, 형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금을 처분해서 동대문 밖에 조그만 집부터 장만했다. 아버지는 열흘 가까이 어딘가를 부지런히 나다니더니 마침내 식구들을 모여앉혔다.
“다시 포목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돈 놓고 돈 먹고, 내 벌어 내가 먹는 이남이 역시 사람 살 만한 곳이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포목상을 다시 시작해서 옛말 이르고 살아보자. 상섭이 너도 장사 따라나서라.”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그러나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왜 대답이 없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을 향해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어... 못한 공부를 마저 했으면 하는데요.”
형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공부?”
아버지가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담배를 빼물었다.
“들어라, 인자 우리 집에는 판검사 나으리가 필요없다. 타향땅에 굴러와 다섯 입이 굶느냐 먹느냐 하는 시급한 판에 시장스럽게 판검사 타령이 다 뭐냐. 우선 돈부터 벌어놓고 판검사 타령은 니 아들 대에나 가서 해도 된다.”
“그렇지만 아버지...”
“어허 쓸데없는 잔소리는 그만 해. 정 공부를 하고 싶거들랑 니 혼자 힘으로 해봐. 니 혼자만 자식이 아니니 이 애비는 뒷바라지할 힘이 없어.”
형은 포목장사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두 달인가 빈둥빈둥 놀다가 옛 학교 동창의 소개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 아버지는 새로 시작한 포목상에 매달려 있느라고 그런 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형의 직장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누군가의 밀고로 빨갱이 혐의를 받고 체포된 것이었다.
“모자라는 놈, 길 한번 잘못 들어서면 그 꼴이 된다는 걸 진작 알았어야지.”
면회를 다녀온 아버지가 맥이 빠져 중얼거린 말이었다. 경찰에서는 형이 이북에서 활동한 경력을 소상히 알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감옥살이한 대목만은 쏙 빠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형이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사리원에 살다가 월남한 어느 사람의 밀고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경찰 쪽에서 보면 형은 영락없이 월남을 가장한 이북의 빨갱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야속한 사람이 누굴까요?”
어머니는 손바닥을 비비며 애가 탔고,
“낸들 아나. 사리원이 커서 잘사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상섭이 놈이 원수 산 사람들도 많았을 게고, 그 사람들 거개가 무슨 수를 써서든 삼팔선을 넘었을 테니 상섭이 놈이 그 꼴 당하기야 쉬운 일이지.”
아버지는 줄담배만 피웠다. 형이 이북에서 감옥살이한 것이 인정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서 죄가 판가름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삼팔선은 막혀 있고,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은 경찰에서 인정하지 않는 가족밖에 없었다.
결국 형은 일 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무래도 그 자식이 출생 시를 잘못 타고 태어난 모양이다.”
어머니가 울먹였고, 아버지는 카악카악 가래를 돋궈 올리고 있었다.
형이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장사에만 파묻혀 있을뿐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기 혼자만이라도 면회를 다니게 묵인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지 그런 아버지를 전혀 탓하지 않았다.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온 형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형은 방에만 틀어박혀 살았고, 어쩌다 밖에 나오면 먼 하늘만 한정도 없이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6 25 전쟁이 터졌다. 피난을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은 형이었다.
“라디오에서 안심하라는데 좀 있어보자. 우리 쪽도 허수아비는 아니잖나 말이야. 빌어먹을, 장사가 터를 잡을 만하니까 왜 이 지랄들이야.”
아버지가 화를 돋구었다.
그러나 어물거리는 사이에 인민군은 서울로 밀어닥쳤고, 한강다리가 끊겼다는 소문이 퍼졌다. 우리 가족은 뚝섬으로 나갔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해도 배를 얻어 탈 길이 없었다. 배 없는 강변에 피난민들만 들끓었다.
“돌아가자.”
아버지가 말했다.
“안 돼요.”
형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 되다니?”
“건너가겠어요.”
“무슨 수로?”
“헤엄을 쳐야죠.”
“빠져 죽는다.”
“자신 있어요.”
“정말이냐?”
“자신 있어요.”
“알았다. 혼자 떠나거라.”
아버지가 형에게 돈을 나눠주었다. 형의 생애 중에서 이때의 결정이 유일하게 현명하고 올바른 것이 되었다. 만약 서울에 남아 있었더라면 의용군에 끌려갔거나, 월남민으로 무슨 곤경을 치뤘을지 모른다.
형이 돌아올 때까지 사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일밤 형이 시퍼런 강물에 빠져죽는 꿈을 꾸어야 했다. 그러나 그 꿈 이야기를 작은누나한테도 할 수가 없었다.
“충청도 어느 마음씨 좋은 집에서 저를 살려줬지요.”
전쟁의 와중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식구들의 궁금증 앞에 한 말은 이 한 마디뿐이었다.
몇십 년 만의 혹한이라고 했다. 일사후퇴의 시작으로 서울은 텅 빈 도시가 되었고, 칼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피난의 행렬은 남으로 남으로 이어졌다. 우리 식구들도 그 피난의 대열에 끼어 있었다. 그러나 형은 빠지고 없었다. 젊은이란 젊은이는 모두 쓸어가다시피 한 제이국민병이 된 것이었다.
우리는 논산까지 내려가 엉거주춤하고 있다가 다시 진격해 올라가는 국군의 뒤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집으로 들어서던 우리 식구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이 먼저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형은 어떤 낯선 여자와 함께였다.
“두 번씩이나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형은 아버지 어머니 앞에 그 여자 소개를 대뜸 이렇게 했다. 그 말은 금방 효과를 발휘했다. 우리의 의혹이 당장 고마움으로 바뀐 것이었다.
“지금 한창 문젯거리가 되고 있지만 그 당시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어요. 날은 춥지요, 급식은 제대로 안 되지요, 사람 수는 갈수록 늘어나죠, 결국 질서가 깨지면서 도망자가 생기고, 배가 고프니까 약탈을 하게 되고, 얼어죽고 굶어죽고, 참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 그대로 따라가다간 제 꼴도 뻔할 것 같더군요. 그래 도망을 해 염치불구하고 이 사람 집을 또 찾아간 겁니다.”
“참 천벌을 열 번 받아 마땅한 놈들이다. 적군을 쳐부순다고 남의 집 생떼같은 자식들 끌어가구서는 그 사람들 먹이고 입힐 돈을 웃대가리 몇몇 놈이 부정을 해쳐먹구 젊은 사람들을 굶겨 죽이고 얼려죽이다니, 육시를 할 놈들, 그래가지고 어지간히 전쟁에 이기겠다. 이놈의 나라는 썩을 대로 다 썩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여자 앞인데도 상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그건 바로 제이국민병사건이었다.
“결혼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강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했을 때처럼 형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이나 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래. 목숨을 두 번씩이나 지켜줬으니 연분은 천생연분인 모양인데...”
아버지는 담배를 신문지에다 말았다. 그 시간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아직 난리도 안 끝났으니 어떻게 난리가 끝나믄...”
“그건 안 돼요!”
형이 느닷없이 소리쳤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가 흠칫 놀라며 뒤로 조금 물러나 앉았다. 아버지가 이빨을 갈아붙이는 뿌드드득 소리를 못 들은 사람은 방 안에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상섭아, 결혼이란 일생에 한 번뿐인 경산데 이 난리통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어머니, 우린 아무 상관 없어요. 냉수 떠놓고 하는 결혼식이 옛날부터 있었잖아요.”
형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번번이 말허리를 자르고들었다.
“혼약만 해두고 시골에 내려가 있다가 난리가 끝나면 해도 될 일 아니냐.”
“글쎄 어머니, 우린 그럴 형편이 못 된다니까요.”
형이 또 언성을 높였고, 어머니의 얼굴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알았다. 식을 올리자.”
놀랍게도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아버지와 의논 한마디 없이 어머니 혼자 결정내린 것은 그것이 최초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방바닥만 내려다본 채 담배만 빨고 있었다.
다음날 정말로 하얀 보를 씌운 밥상 위에 냉수 한 사발을 찰랑찰랑하게 떠다놓고 결혼식을 올렸다. 꼭 장난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슬픈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엄숙한 것 같기도 했던 그 결혼식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철이 들어서야 알았지만, 그때 형수는 이미 임신중이었던 것이다.
전쟁은 계속 중이었고, 형 앞으로 징집영장이 나왔다.
“처가로 피해라.”
아버지가 지체없이 한 말이었다.
“글쎄요,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피하라니까, 개죽음 당한다.”
“기피하고 싶지 않아요.”
“글세, 이번 한 번만이라도 애비 말 들어.”
“생각해보겠어요.”
그러나 형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결혼생활 사개월 만에 형은 전쟁터로 떠났다.
이집 저집에 전사통지서가 예고없이 날아드는 불안 속에서 형수는 혼자 애를 낳았다. 그리고 또 한 해가 바뀐 여름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형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남과 북의 포로교환이 끝나고서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의 입에서도 형의 생사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장사는 급속한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미군용 더블백에다가 마구 쑤셔넣어 가지고 온 돈을 간추려 백 장씩의 다발로 묶는 일을 거의 매일밤 자정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 일이 전혀 신명나 보이지를 않았다. 그 일을 돕고 있는 형수도 마찬가지였다.
조카 인희는 커갈수록 형의 모습을 인화시켜갔다. 아버지는 그런 손녀딸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인기척이 나면 흠칫 놀라고는 했다.
형수가 아버지의 가게일을 돕기 시작한 것은 인희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아버지가 원해서 그리된 일인지, 형수가 원해서 그리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시작되고부터 우리는 형수의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없이 온순하고 나약해 보이기만 해서 거친 장사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던 형수가 의외로 그 일을 빈틈없이 해나갔던 것이다. 사람이란 으레 그 깊은 속을 알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나는 형수의 그런 새로운 면모를 미처 개발되지 않았던 능력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건 인위적인 노력, 그러니까 딸 하나를 데리고 평생을 혼자 살아야 될지도 모를 위기감에서 스스로를 구출하고자 하는 방어본능이 형수를 그렇게 강하고 질기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형수를 무척이나 대견해 했지만 내 눈에는 그런 형수가 한없이 슬픈 그림자로만 보였다. 형수한테 내가 할 수 있는껏 마음을 썼던 것은 형 때문이 아니라 한 여자가 지닌 그 가엾은 슬픔 몸부림이 끝없이 내 가슴을 적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죽음이란 그런 것이지만 아버지의 죽음도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왔다.
“시앙서어바이...”
아버지는 분명 내 손을 잡았으면서도 희미한 바람결처럼 형의 이름을 부르고는 눈을 감았다. 그 희미한 음성은 형이 내 가슴 속에 만들어놓은 추억의 산골짜기들을 굽이쳐 돌며 멀리멀리 메아리쳐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항시 몸에 지니고 다녔던 때절은 가죽지갑 속에서는 몇 푼의 돈과 사진 한 장이 나왔다. 그건 누렇게 변색이 된 사각모를 쓴 형의 모습이었다.
그 사진은 형수에게 넘겨졌고, 사진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받쳐 들여다보던 형수는 마침내 두 손을 이마에 모두어 붙이며 흑 울음을 터뜨렸다. 형 때문에 형수가 식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건 그것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를 뒤따르기라도 하듯이 어머니도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 비로소 형수가 가게일을 익힌 것이 얼마나 현명한 처사였던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채로, 그 현명한 단안은 분명 아버지가 내린 것일 거라고 나는 믿었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형수와는 떨어져 살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남긴 적잖은 재산을 한 푼도 받기를 원하지 않았고, 형수는 반을 나에게 넘겨주려고 애를 태웠다. 나는 결국 그 돈을 받아 지금의 건축회사를 차리는 밑천으로 삼았다. 형수는 내 도움이 전혀 필요없게 야무지게 포목점을 운영해가며 딸자식 인희를 키워나갔다.
나는 인희가 놓고 간 하얀 사각봉투를 집어들었다.
청첩장의 빳빳하고 흰 종이 위에서 형은 선명한 세 자의 검은 글씨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사앙서어바아...”
내 가슴 속에 들어앉은 추억의 산골짜기들을 굽이쳐 돌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메아리쳐가고 있었고,
“네에에 아버지이이...”
아슴한 저쪽 산골짜기 끝에서 형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오고 있었다.
두 메아리가 어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우리 집안에 유일하게 남겨진 남자라는 고적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1995)
☆ 조정래 소설가
▲ 1943년 전남 승주군에서 출생
▲ 1949년 순천 남국민학교 입학
▲ 1956년 광주 서중학교 입학
▲ 1959년 서울 보성고등학교 입학
▲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입학
▲ 1972년 청산댁 발표
▲ 1981년 「유형의 땅」으로 현대문학상 수상
▲ 1982년 「인간의 문」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 1984년 「메아리 메아리」로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 1991년 「태백산맥」으로 단재문학상 수상
/ 2020.06.10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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