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이 순간 피천득, 사람 신혜경, 사는 법 홍관희 (2020.06.11)

푸레택 2020. 6. 11. 08:35

●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 사람 / 신혜경

한문 수업 시간
정년퇴임 앞둔 선생님께
제일 먼저 배운 한자는
옥편의 첫 글자 한 일(一)도 아니고
천자문의 하늘 천(天)도,
그 나이에 제일 큰 관심사였던
사랑 애(愛)는 더더욱 아니고
지게와 지게작대기에 비유한 사람 인(人)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사람 인(人)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아슬하다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 사는 법 / 홍관희

살다가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멈춰 선 채
달리 사는 법이 있을까 하여
다른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노라면
그 길을 가던 사람들도 더러는
길을 멈춰 선 채
주름 깊은 세월을 어루만지며
내가 지나온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기도 하더라
마음은 그리 하더라

● 어떤 일을 하십니까? / 브라이언 카바노프

어떤 사업가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
"아버지입니다"

"아니, 하시는 일이 뭐냐고요?"
대답은 똑같았다
"아버지입니다"

상대방은 다시 물었다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시는군요
어떤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리시느냐고
물은 겁니다"

"본래 하는 일은 아버지 역할입니다
하지만 날아오는 청구서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2020.06.11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