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등성이 -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大小事)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나가는 칠흙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 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 리를 갈 듯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식식거리며 아버지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출처] 시집「 악어 」2005년 실천문학사
ㅡ 사랑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달의 머릿결처럼 둥근 문양이다. 그것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은 불멸의 속성체이다. 우리가 생활의 모서리에 부딪칠 때마다 새파란 불꽃으로 서로를 상하게 하면 역설적이게도 곧장 유선형으로 마음 구부리며 더욱 뜨거워져 서로에게 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를 보면,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며 뛰쳐나가서는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라며 돌아오는 팔순의 '아버지'와,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고 달래는 아들, 남편이 집을 나갔는데도 본체만체 하다가 '대문 앞 전등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는 '저 낮은 산등성이' 곧 참으로 둥글고 따사로운 가족애를 꼭 보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지켜야 불멸한다. 그냥 불멸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안성길 시인·창원대 국문과 강사감상]
ㅡ 노부부의 부부 싸움 아닌 부부싸움을 지켜보노라니 입가에 잔잔하게 번지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을 듯 하다. 한 평생 희노애락을 같이 해 온 부부의 연이란 게 저런 것일까. 마음에 안들면 한량없이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없으면 그립고 궁금해지고 걱정되는 것이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부의 연이 아니던가. 옛 어르신들은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산등성이 하나 쉬이 넘지 않는 평생의 금도가 있었고, 그 지아비를 환한 전등불로 말없이 기다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슴 밑바닥에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손바닥 뒤집듯 쉬이 내쳐지는 오늘날의 손쉬운 인연에 대하여, 그리고 가벼운 만남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가슴 따뜻한 시이다. 그리고 독자를 ‘산등성이‘로 끌고 가는 시인의 시적인식이 뛰어나고, 참 기발하다.
[양현근]
/ 2020.05.2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