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내 인생의 나무들, 한 그루 보리수나무에 스쳐가는 단상 (2020.04.18)

푸레택 2020. 4. 18. 19:21

 

 

 

 

 

 

 

 

 

 

 

 

 

 

 

 






● 내 인생의 나무들, 한 그루 보리수나무에 스쳐가는 단상(斷想)

 

몇 달째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해마다 가던 봄꽃 산행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집 근처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며 나무와 풀꽃을 관찰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동네 산책 중에 수줍게 꽃을 피운 뜰보리수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나는 뜰보리수를 만나면 꼭 은빛나는 잎 뒷면을 유심히 살펴본다. 뜰보리수 은빛 이파리 속엔 내 유년(幼年) 시절의 모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뛰어놀던 뒷산에는 보리수나무가 참 많았다.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를 맛보며 뛰놀던 어린 시절, 힘들고 가난했지만 마음의 정 나누며 살았던 그 시절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갖게 된다면 나는 뜰보리수를 다섯 그루쯤 심고 싶다. 가을이 오면 낙엽지는 뜰에 앉아 빨갛게 익은 색깔 고운 뜰보리수 열매로 만든 차를 마시며, 유년 시절 뒷동산에서 뛰놀던 내 모습 떠올리며 아름다운 가을을 음미하고 싶다.

 

나무에 얽힌 또다른 추억은 스무살 남짓 젊음의 시절, 삼년의 세월을 통째로 나라에 바칠 때의 일이다. 사병식당과 FDC 올라가는 갈림길에 산뽕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홀로 서 있었다. 나는 그길을 지나갈 때면 그 커다란 산뽕나무를 습관처럼 올려다 보곤했다. 그럴 때면 산뽕나무는 늘 나를 반겨주었고 삭막한 군대 생활에 지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부대 내 민간인이 경작하던 논에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그 무덥던 한여름 우렁차게 울어대던 매미도 지칠 때 쯤이면 산뽕나무는 까만 오디 열매를 다닥다닥 매단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멋진 산뽕나무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오디 열매를 다닥다닥 매단 산뽕나무를 본 적이 없다. 그때 그 외롭고 서럽던 시절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산뽕나무를 나는 지금껏 잊어 본 적이 없다. 혹독한 시절 나의 벗이 되어 주었던 그 산뽕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대암산 산골짝 그 낯설고 물선 곳에 홀로 서있는 신병(新兵)들에게 여전히 마음의 벗이 되어 그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있을까?

 

보리수나무, 산뽕나무와 함께 추억을 소환하는 나무는 눈녹은 산에 피어나는 연분홍 꽃 진달래다. 중학생 시절 봄이 오면 뒷동산에 올라 꽃망울 가득한 진달래 꽃가지를 한아름 꺾어와 가난한 방안에 꽂으며 봄의 향기를 느끼곤 했다. 진달래꽃 피어난 산 언덕엔 노란 양지꽃도 함께 피어났었지. 김소월의 산유화를 읊조리며 오르내리던 뒷동산엔 올해도 진달래꽃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났을까?


동토(凍土)의 땅 강원도 양구, 겨우내 쌓인 산골짝의 눈이 녹을 때 쯤이면 대암산(大岩山)을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게 하여 우리 병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진달래꽃. 우리들의 벗이 되어 살을 에는 혹한의 추위와 모진 세월 함께 이겨내고 꽃망울 활짝 터뜨리던 너를 어찌 잊으랴. 너를 안고 내가 울던 그 눈물 많던 슬픈 시절을 어찌 잊으랴. 어느 봄날 감성 충만한 전우(戰友)는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 왔다. 삭막한 내무반에도 얼어붙은 병사들의 마음에도 환한 웃음꽃 피어나게 하던 진달래꽃을 올해도 누군가 꺾어 왔을까?

 

나는 생태 탐사를 하면서 멋진 명품(名品) 나무들과 아름다운 풀꽃들을 수없이 만났다. 감탄의 소리 절로 나왔던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울릉도 성인봉에서 본 너도밤나무, 제주도 한라산의 구상나무, 비자림숲과 황근, 윤선도가 귀향 가서 머물렀던 보길도에서 본 난대림과 대나무숲, 군산 선유도에서 본 예덕나무 군락, 정선 동강의비비술나무와 난티나무, 서해안 어디선가에서 본 모감주나무 그리고 서울 옛 창덕여고 자리에서 살아가는 귀족 나무 백송(白松).

 

이런 명품 나무들도 내 가슴에 아름답게 남아있지만, 그래도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으뜸나무는 단연코 가난하던 유년기 시절 푸른 꿈을 심어주던 뒷동산 언덕의 보리수나무다. 그리고 버금나무는 젊음을 나라에 바치던 그 서럽고 혹독하던 시절,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나를 손내밀어 붙잡아주던 산뽕나무다. 또한 학창시절과 군대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진달래꽃이다. 보리수나무와 산뽕나무 그리고 진달래꽃은 힘들고 서럽던 시절 나의 삶을 지탱해 준 고마운 나무들이고 내 삶의 영원한 동반자다.


오늘 동네 산책길에서 마주친 뜰보리수 한 그루가 봄날 저녁 내 심연(深淵)에서 잠자던 나무들을 일깨운다.

 

/ 2020.04.18 벚꽃 지는 어느 봄날에.. 김영택


* 추록(追錄)


나는 중고교 학창 시절에 과학적 재능보다는수학적 재능이 뛰어났었다. 그런데 대학 진학 때 뜻하지 않게 과학 분야인 생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생물학은 강의 수업에 이어 많은 실험 실습과 야외 실습을 해야 했다. 내향적 성격인 나는 남들과 팀을 이루어 활동해야 하는 이런 일들이 무척 싫었다. 차츰 적응해 갔지만 내가 왜 이런 적성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분야를 공부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에 빠져 한때 방황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현직(現職)에서 물러나 돌아보니 생물학을 공부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비록 잠재된 나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나무와 풀꽃들을 만나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어 관조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남들보다 나무와 풀꽃 이름을 하나더 알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가는 멋진 나무들을 만나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제 어딜 가도 벗이 되어주는 나무가 있고 안부를 나눌 수 있는 풀꽃들이 있어 외롭지 않으니 생물학을 공부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 2020.04.21 택..


● 보리수 /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에서)

 

성문밖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 같이

그대여 여기와서 안식을 찾으라

안식을 찾으라

 

성문앞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밑

 

오늘 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 같이

그대여 여기와서 안식을 찾으라

안식을 찾으라

 

● 인생의 선물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봄이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그리도 고운 줄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내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지고 난 그 후에야

비로소 내 마음에 꽃 하나 들어와 피어 있었네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 끄덕이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 하나 있다면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친구만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건 바랄 게 없어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 다른 나무, 하나의 이름 보리수(菩提樹)

 - 동명사목同名四木), 다른 나무 한 가지 이름


오늘 만난 보리수나무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전혀 다른 나무인데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이 보리수나무다. 빨간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나무, 석가모니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성문밖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 절을 찾는 사람들이 보리수나무라고 하는 찰피나무 이들은 모두 같은 나무일까? 이 네 나무는 어떻게 다를까?

 

첫째 보리수나무 (보리수나무과)

 

보리수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토종 나무이다. 학명은 Elaeagnus unbellatus이다. 낙엽 관목으로 키가 크지 않고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 덤불나무이다. 잎의 뒤쪽은 회백색으로 희끗희끗한 은빛이 난다. 봄철에 아주 작은 흰꽃이 피고 열매는 빨갛게 익는데 먹을 수 있다. 열매가 둥근 우리의 토종 '보리수나무'에 비해 일본 개량종인 '뜰보리수'는 꽃이 많이 피고 열매가 길쭉한 타원형이다. 유사종으로 보리수나무를 닮은 보리장나무, 보리밥나무가 있다.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은 씨의 모양이 보리 같다고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째 인도보리수 (뽕나무과)

 

인도와 스리랑카 원산으로 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이다. 학명은 Ficus religiosa, '인도보리수(印度菩提樹)'가 정식 명칭이다. 석가모니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며 힌두교도들은 이 보리수를 성스러운 나무로 숭배하기도 한다. 고무나무같이 잎이 두껍고 넓으며 인도처럼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열대성 나무로, 30~40m까지 자라는 큰 상록수다. 중국을 거쳐 불교가 들어올 때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를 음역해 보리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겨울 추위 때문에 야생 상태에서는 살기 어렵다. 국립수목원이나 서울수목원 같은 몇 군데 온실에서나 볼 수 있다.

 

셋째 유럽피나무 (피나무과)

 

피나무과의 낙엽 교목(큰키 나무)으로 학명은 Tilia miqueliana로 슈베르트의 보리수이다. 독일어 명칭은 린덴바움(Lindenbaum) 영어로는 Linden tree이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에 나오는 바로 그 나무이다. (성문밖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으며 열매는 차를 만들어 마신다.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는 인도보리수 대신 절에 많이 심으며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린덴바움(Linenbaum)'이 보리자나무·찰피나무와 비슷하다고 누군가가 ‘보리수’라고 번역해 버렸다. 학창시절 배운 ‘성문밖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보리수나무가 아니고 '유럽피나무'라고 하는 종이다.

 

넷째 찰피나무 (피나무과)

 

사찰, 절에서는 유럽피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인 찰피나무를 인도보리수 대용으로 심었다. 열매가 염주 비슷하다하여 염주나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절에서 흔히 보리수나무라고 하는 것은 인도보리수도 아니고 유럽피나무도 아닌 찰피나무이다.

 

정리를 해보면 빨간 열매가 열리는 것은 우리 토종 나무인 '보리수나무'와 일본 원예종인 '뜰보리수'이고, 석가모니의 보리수는 '인도보리수'이다. 또한 슈베르트 가곡 성문밖 우물곁의 보리수는 '유럽피나무'이다. 흔히 절에서 보리수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인도보리수도 아니고 유럽피나무도 아닌 찰피나무이다. 어떻든 빨간 열매가 달리는 보리수나무와 석가모니가 성불했다는 보리수나무,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나무는 각각 다른 나무다.

 

자료를 찾아 이렇게 정리해 보았는데 내가 비록 식물 공부를 조금 했지만 식물학 박사도 아니니 이것이 100%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이니 혹시 사실과 다르거나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추후 수정하려 한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 식물분류학 분야도 알면 알수록 더 혼란에 빠진다.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저 지적호기심(知的好奇心)을 충족시킬 정도, 즐길 수 있는 정도로만 알아두면 되지 않을까 싶다. 

 

몇년 전쯤 방콕 여행 중에 왕궁에서 인도보리수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생각보다 꽤 큰 나무였다. 인도보리수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는 흔한 나무라고 한다. 유럽피나무는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나무도 엄청 키가 큰 나무이다.

 

같은 나무를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나무인데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한번 이름을 잘못 붙이면 혼란스럽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 보리수나무처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고치지도 않고 누구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 쓴 글에서도 소개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카시아나무도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잘못 붙여진 이름, 잘못 부르고 있는 이름이 어찌 보리수나무 하나 뿐이랴. 식물 공부를 하다 보면 잘못 붙여진 이름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남북이 서로 다르게 부른 나무 이름도 숱하게 많다고 한다. 남북통일이 되면 식물학자들이 모여 앉아 나무 이름부터 통일해야 한다. 보리수나무가 이름 붙이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든다.


 / [참고] Daum 백과 2020.04.18 김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