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동네한바퀴] 소나무, 낙상홍, 미국낙상홍, 삼색버드나무, 서양톱풀, 남천, 수국, 패랭이꽃 피어난 초여름 동네 풍경 (2019.06.07)

푸레택 2019. 6. 7. 21:43

 

 

 

 

 

 

 

 

 

 

 

 

 

 

 

 

 

 

 

 

●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만난 풀꽃 나무꽃

 

유치원에 다녀온 손주들과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준 후 이웃한 아파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초여름 풀꽃과 나무꽃도 아름답거니와 오늘따라 소나무 너머 청명한 하늘빛이 참으로 곱고 눈이 부시게 푸르르다.

 

오늘은 수국과 남천, 낙상홍과 미국낙상홍, 실유카, 서양톱풀, 소나무, 삼색버드나무, 일본조팝나무, 만첩빈도리,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큰금계국, 패랭이꽃, 황금낮달맞이꽃이 반겨 맞아준다. 나도 이 멋진 벗들을 마음에 담았다.

 

● 동네 한 바퀴 / 외국곡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우리 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우리도 인사하며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 꽁당보리밥♪♬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 보리밥 ♬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 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

 

어릴 적 우리들은 꽁당보리밥♪♬

노래를 불렀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처음 번역은 위의 동네 한 바퀴 ♬

가사가 맞는 것 같습니다. ♬ ♬

 

● 소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몇 년 전 산림청이 한국갤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물어본 결과 절반에 가까운 46퍼센트가 ‘소나무’라고 답했다. 뒤이어 2위를 차지한 은행나무는 8퍼센트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어 산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가 소나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소나무와의 인연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소나무로 지어진 집의 안방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산모는 몸조리를 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는 솔가지가 끼워진다. 아이가 자라면서 뒷동산의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땔감을 해오는 일터가 되기도 한다. 명절이면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茶食)을 먹고 양반가라면 십장생도가 그려진 병풍을 치고 꿈나라로 들어간다.

 

가구를 비롯한 여러 생활필수품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선비로 행세를 하려면 송연묵으로 간 먹물을 붓에 묻혀 일필휘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세상살이가 끝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힌다. 그러고도 소나무와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도래솔로 주위를 둘러치고는 다시 영겁의 시간을 소나무와 함께 한다.

 

소나무의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구황식물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풀뿌리의 대표는 칡이며, 나무껍질의 대표는 소나무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으면 소나무 속껍질, 즉 송기(松肌)를 벗겨 먹었다. 그러나 섬유질만 많을 뿐 실제로 영양분은 얼마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가난을 표현할 때 흔히 ‘똥구멍이 찢어지게’라는 표현을 잘 쓴다. 이 말은 소나무 껍질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여 변비가 생기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소나무와의 인연은 3~4천 년 전 선조들이 한반도 안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주로 참나무로 이루어진 주변의 숲을 개간하고 연료로 쓰면서 소나무는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직접 햇빛을 많이 받아야만 살아남는 소나무는 사람들이 개발을 위해 울창한 숲을 파괴하거나, 산불로 인해 다른 나무가 다 타버려 공간이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 크고 작은 인간들의 다툼과 대규모 전쟁으로 한반도의 숲이 파괴되면서 소나무는 반대로 자신의 터전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오늘날 구릉지가 많은 서해안 일대가 동해안보다 소나무가 더 많은 것은 평양, 개성, 서울, 부여, 나주 등 고대국가의 중심지가 대부분 한반도 서쪽이었던 것과도 관계가 깊다.

 

역사 흐름에 따라 차츰 세력을 넓혀 가던 한반도의 소나무가 최고의 나무로 자리를 잡은 것은 조선왕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소나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최근 각종 건설공사나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나무를 분석해보면 고려시대 이전에는 소나무의 비율이 4~6퍼센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또 권력자의 관재는 느티나무나 참나무 및 금송이나 넓은잎삼나무 등 수입나무가 대부분이고, 소나무로 만든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나 참나무를 더 많이 썼다. 몽고란 이후 사회적인 혼란을 거쳐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숲은 더욱더 소나무가 많아지고 주위에 쓸 만한 나무는 소나무밖에 남지 않았다.

 

조선왕조는 소나무 왕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나무를 숭상했다. 관청이나 양반의 집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으며, 배를 만들거나 임금의 관재에도 꼭 사용되었다. 이를 위하여 전국에 소나무가 잘 자라는 2백여 곳에 봉산(封山)을 설치하여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엄격한 소나무 보호 정책을 썼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숲은 점점 더 황폐화되어 버렸다.

 

오늘날 소나무가 우리 산의 가장 흔한 나무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영리함이 있어서다. 햇빛만 풍족하면 척박한 땅과 건조함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돌무더기나 바위틈에서도 자람을 이어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다.

 

소나무의 영리함이란 종족번식의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핀다. 남매끼리의 수정은 자손의 형질을 점점 나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소나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암꽃은 꼭대기 근처에, 수꽃은 아래 나뭇가지에 피도록 설계했다. 풍매화인 소나무 꽃가루가 바람에 날아가 위로 올라갈 일은 거의 없으니 남매 수정이 안 되도록 일차적인 안전조치는 한 셈이다.

 

회오리바람 등 공기의 상하 이동도 드물게 있다는 사실을 배려하여 암수 꽃이 피는 시기를 약 일주일 정도 차이를 두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남매 수정 불가라는 원칙만 고수하다 엄혹한 자연계에서 자칫 자손이 아예 생기지 못하는 불행이 생길까봐 5퍼센트 전후는 수꽃이 위로 가고 암꽃이 아래로 내려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이 정도면 소나무가 영리하다고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소나무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접미어에 송(松)이 들어가는 이름은 수없이 많다. 우선 소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적송부터 알아보자. 나무줄기가 붉다고 하여 흔히 적송(赤松)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이름이 아니고 일본 이름이다. 그들은 ‘아까마쯔’라고 읽는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없애고 강제동화 정책을 쓸 때 나무 이름도 일본식으로 부르도록 강요했다. 적송은 붉은 줄기를 가진 소나무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하여 오히려 갈수록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옛 문헌에 나오는 소나무는 송(松) 아니면 송목(松木)이다.

 

소나무 종류는 수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해송(海松)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형제로 원래 이름은 곰솔이다. 반송(盤松)은 보통 소나무가 외줄기인 것과 달리 아래부터 여럿으로 갈라지는 소나무다. 춘양목(春陽木)은 해방 직후 영동선 춘양역에서 많이 가져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정식 이름은 금강소나무다. 미송(美松, Douglas fir)은 미국의 대표적인 바늘잎나무로서 소나무와는 과(科)가 같으나 속(屬)이 다르다. 금송(金松)은 낙우송과의 나무로서 소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1842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쥬카르느(Zucarinii)가 《일본식물지》 1권에 소나무 학명과 함께 ‘일본적송(Japanese red pine)’이란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 소나무는 외국에 일본적송으로 알려져 있다.

 

● 남천(南天)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2)

 

남천은 중국 남부와 인도가 원산지로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 관목이다. 줄기가 모여나기 하며, 성질이 강하고 곧게 자라 꼭지 부근에 주로 잎이 달린다. 그래서 중국 이름은 ‘남천대나무(南天竹)’이며, 영어 이름도 ‘신성한 대나무’란 뜻이다. 원산지에서 오래된 나무는 키가 4~5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남천은 허리춤 남짓한 난장이로 육종한 것들이 많다.

 

잎자루가 세 번이나 갈라지는 3회 깃꼴겹잎이 독특하며, 잎은 긴 마름모꼴로 끝이 뾰족하다. 암수 한 나무로 초여름 날, 가지 끝에 한 뼘이 훨씬 넘는 원뿔모양의 긴 꽃대를 위로 내민다. 초록 잎을 바탕으로 하얀 꽃이 줄줄이 피고, 굵은 콩알만 한 열매는 늦가을에 붉게 익어 다음해 봄까지 달려 있다.

 

이런 독특한 생김새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남천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겨울의 붉은 잎이다. 남천은 늘 푸른 넓은잎나무이니 단풍이란 말은 좀 어울리지 않지만, 잎 모양은 영락없는 붉은 단풍이다. 집단으로 심어 놓은 남천의 붉은 잎은 겨울 풍광의 삭막함을 씻어주는 악센트다. 겨울을 버티기 위하여 잎 속의 당류(糖類) 함량이 높아지면서 붉은색을 띠는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의 남천은 주로 일본에서 개량한 원예품종을 심고 있다. 일본은 아주 오래전에 중국에서 가져다 심은 탓에 현재는 산에 자생하기도 한다. ‘난텐’이란 일본 이름 자체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정을 깨끗이 한다’라는 뜻과 통하므로 귀신이 출입하는 방향이나 화장실 옆에 심기도 한다. 또 남천 젓가락은 체하는 것을 막고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오늘날에는 주로 남천을 정원수로 널리 심지만 원래 쓰임은 약용식물이다. 열매, 잎, 줄기, 뿌리까지 모두 이용된다. 열매에는 여러 종류의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으며, 지각 및 운동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여 기침을 멈추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잎은 위장을 튼튼히 하고 해열을 시켜주며, 역시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리작용이 있다. 잎에는 미량의 청산(靑酸, 시안화수소)이 들어 있다. 흔히 음식 위에 남천 잎을 얹어두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청산 때문에 음식의 변질을 막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남천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신사임당(1504~1551)의 〈화조도〉에 남천으로 짐작되는 그림주이 등장하므로 적어도 1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가져와 심고 가꾼 것으로 짐작된다. (Daum 백과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