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부산여행] (7)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최치원(崔致遠) 동상, 황옥공주 인어상, 출렁다리, 해운대 해수욕장 갈맷길 걷기 (2019.05.06)

푸레택 2019. 5. 11. 22:36

 

 

 

 

 

 

 

 

 

 

 

 

 

 

 

 

 

 

 

 

● 가족과 함께 한 3박 4일 부산여행 (2019.05.03~05.06)

 

5/3(금) Day1

* 서울역 출발 KTX 18:15

* 부산역 도착 20:50

* 해운대 숙소 Glory Hotel

5/4(토) Day2

* 해운대해수욕장 해변 산책

* 자갈치시장 수산물센터 2층 횟집(점심) ☆

* 자갈치시장 하늘공원 전망대 관람

* 부산국제영화제거리 산책

* 남포동 국제시장 '씨앗호떡' 간식 ☆

* 국제시장 '꽃분이네' Photo

* 보수동 책방골목

* 부평깡통시장 '미도어묵' 구매 ☆

* 광안리해수욕장 해변 산책

* 다이도코로 (저녁) ☆

* 해운대 숙소 (Hotel Elysia) 도착

5/5(일) Day3

* 태종대 다누비열차 탑승

* 태종대 전망대, 영도등대 산책

* 국제시장 70년 전통 18번완당집 (점심) ☆

*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걷기

* 오륙도 스카이워크, 해파랑길 시작점 산책

* 센텀시티역 신세계백화점 '경주빵' 구매 ☆

* 해운대마린시티 풍원장 꼬막정찬 (저녁) ☆

5/6(월) Day4

* 해운대시장 호박죽, 팥죽 (아침) ☆

*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 APEC 2005 KOREA 기념관

* 해운대 석각, 최치원 선생 동상

* 황옥공주 인어상 출렁다리 산책

* 해운대갈맷길 걷기

* 부산역 초량밀면 (점심) ☆

* TEXAS Street, 차이나타운 상해거리 산책

* 신발원(新發園) '만두' 구매 ☆

* 부산역 출발 KTX 15:45

* 서울역 도착 18:15

 

● 동백섬의 새로운 명물, 누리마루 APEC하우스

 

누리마루 APEC하우스는 2005년 11월 18~19일에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해운대구 중동(中洞)의 동백섬에 세운 건축물이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 명칭은 순수 우리말인 누리(세상, 세계),마루(정상, 꼭대기)와 APEC회의장을 상징하는 APEC하우스를 조합한 것으로“세계정상들이 모여 APEC회의를 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울창한 동백나무와 송림으로 둘러싸인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동백섬에 위치해 있으며 APEC 이후 기념관 및 고급 국제회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누리마루는 지상 3층의 건축물로 건물 전체의 조형은 한국전통의 건축인 “정자”를 현대적으로 표현했으며, 지붕의 형태는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하였고, 내부장식은 한국의 창조적 전통문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대청마루를 컨셉으로 한 테라스에서는 오륙도, 광안대교, 달맞이 언덕 등을 조망할 수 있으며, 해운대 해수욕장과 인접하여 해운대 절경을 감상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미와 현대미를 고루 갖춘 고품격 국제 회의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의 전체 건물 구조는 한국 전통 건축인 정자를 현대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지붕은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하였다. 12개의 외부 기둥은 부산의 역동적인 모습을, 내부 장식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밖에 대들보 꼴로 만들어 전통 단청을 입힌 로비 천장과 대청마루 느낌을 받도록 한 로비 바닥, 석굴암 천장을 모티브로 설계한 정상회의장, 구름 모양을 형상화한 오찬장 등 건물 구석구석마다 한국 전통 양식이 짙게 배어 있다. (Daum 백과 발췌)

 

● 최치원(崔致遠)

 

최치원은 경주 사량부(沙梁部)에서 태어나 12살 때인 경문왕 8년(868) 당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하였다. 18세 때인 874년 외국인 대상의 과거 시험인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의 현위(縣尉)가 되었다. 황소(黃巢)의 난[875~884]이 일어나자 회남 절도사 고병(高騈)의 종사관으로 나가 「격황소서(檄黃巢書)」[토황소 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29세 때인 헌강왕 11년(885)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 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郎知瑞書監事)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왕실 귀족들의 경계와 질시로 중앙 관직에서 물러나 대산군(大山郡)[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부성군(富城郡)[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태수 등 외직을 전전하다가 하정사(賀正使)로서 당나라에 한 차례 다녀왔다. 진성 여왕 8년(894)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임금에게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올려 채택되고, 아찬 관직을 받았으나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개혁이 무산되었다.

 

최치원은 당에서 익힌 학술과 식견을 바탕으로 큰 뜻을 펼치려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자,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의 산천을 노닐며 책 읽고 시 짓는 일로 소일하였다. 최치원이 전국을 방랑할 때 부산의 바닷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 동백섬 인근 바위에 자신의 자(字)를 따서 ‘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겼다. 해운대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Daum 백과 발췌)

 

● <돌아와요 부산항에> 황선우 작사작곡, 조용필 노래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