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일본 오키나와] 3박4일 자유여행(2013.10.6~10.9) 첫째 날

푸레택 2014. 1. 31. 00:07

가족과 함께 한

일본 오키나와 3박4일 여행

(2013.10.6~10.9)

 

* 오키나와 [Okinawa, 沖縄]

류큐 제도[琉球諸島]로 이루어져 있다.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 섬은 길이 112㎞, 너비 11㎞, 넓이 1,176㎢이다.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 초기 현이 되기 전까지는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는 반(半)독립적인 왕국이었다.

 

주요경제활동으로는 다랑어잡이·목축업·제당업 및 파인애플 통조림제조업이 있다. 고구마·쌀·콩 등도 재배하며 직물·사케(일본 청주)·칠기를 생산한다. 앞바다에서는 원유를 생산한다. 현청 소재지는 나하[那覇]이다.

 

오키나와 섬은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이다. 1945년 4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대한 육군·해군·공군 합동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일본군은 이에 대해 강력한 방어전을 벌였다. 미군은 이 섬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3개월 동안 벌인 전투에서 전사 1만 2,000명, 부상 3만 6,000명의 피해를 입었고, 일본군은 10만 명 가량이 전사했다.

 

1972년 오키나와 섬은 일본에 반환되었으나 광범한 미군시설은 계속 작전용으로 남아 있다. 2개 국정공원과 아열대라는 기후조건이 독특한 전통적인 문화유적과 어우러져 관광산업이 급신장했다. 면적 2,255㎢, 인구 1,273,508(1995).

 

첫째 날(2013.10.6) : 수도 나하 류큐왕이 살던 슈리성, 류큐대학

수례문(守禮門)과 수리성(首里城) : 1967년, 오키나와 본섬남부에서 발견된 ‘인골’에 의해, 오키나와에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 뒤에 1429년부터 1879년까지 오키나와의 류큐왕조가 건재했으며, 수리조은 류큐왕조의 영지이며 오키나와 관광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관광사적지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오키나와 본토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최근에 복원되었으며 1992년 11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슈리성은 오키나와의 중심도시인 나하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오키나하의 주요한 관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2차대전 후 오키나와를 직접통치에 들어간 미국은 1050년 폐허가 된 슈리성을 복원한 슈레이노문(守禮門)을 비롯한 많은 사적을 복원했으며, 류큐대학을 창건하였다.

 

또한 슈리성의 성벽의 돌담도 매우 아름답다. 오키나와에 특유의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성벽으로 오키나와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산호로 만들어진 현무암은 친근감마저 들게 한다. 왕정 시대에 국왕의 정무와 예식에 사용되어졌던 세이덴은 오키나와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중국과 일본 양식을 도입한 세련된 류큐 건축술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슈리성 주변에는 옛 왕조시대의 역사적 건조물과 사적, 전통공예품의 공방 등도 많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