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근대화 거리 골목 산책
대구에 사는 이종사촌 동생이 딸내미 결혼식 소식을 알려왔다. 오랜만에 항일 독립 운동 정신이 깃든 ‘문화의 도시’ 대구를 찾았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니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동대구역에 내려준다. 결혼식장 참석까지 시간 여유가 많아서 대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반월당역에서 내려 골목투어를 시작했다. 약령시 약전골목과 한의학박물관을 시작으로 대구 근대화 거리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인 이상화의 고택(古宅)과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서상돈의 고택, 1900년대에 세워진 계산성당, 90계단 3.1만세 운동길, 대구제일교회, 선교사 고택, 가곡 ‘동무생각’의 청라언덕길을 산책했다. 따뜻한 봄 기운을 받으며 역사의 길을 걷는다. 이곳은 죽마고우(竹馬故友)와 종교 그리고 삶을 생각해 보는 공간이다. 지나간 옛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곳이기도 하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계산성당과 대구제일교회를 둘러보고 3.1만세 운동길과 청라언덕길을 걸은 후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찾아 방천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이등병편지’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일어나’ ‘광야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김광석의 노래들이 끝없이 귓가를 맴돈다. 김광석은 죽지 않았다. 아직도 아름다운 목소리와 젊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대구를 찾으니 아련한 유년기 시절의 기억들이 그리움을 안고 얼핏얼핏 스쳐 지나간다. 나는 유년기 시절을 대구에서 가까운 칠곡군 인동면에서 보냈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났지만 그래도 그때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다섯살 위인 누나는 나보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은 탓일까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이 그리운 탓일까 가끔씩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어린 시절 추억들을 어제 일인 듯 얘기한다.어머니와 함께 청량리역에서 탄 중앙선 완행 밤열차는 새벽이 되어서야 화본역에 도착했었지. 새벽 풀잎 이슬 바짓가랑이에 적시며 먼 길 걸어걸어 이모님 댁 찾아가곤 했었는데... “택이 왔나!”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산성면 백학리 큰이모님 목소리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제 이름 불러 주시려나. “일주일은 같이 지내야지. 이틀밤 자고가면 우야노. 이럴거면 다음엔 오지 마라” 하시며 못내 서운해 하시던 부계면 창평리 작은이모님. 팔공산 아래 대율 한밤마을에서 홀로 살아가시던 둘째 이모님.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도 깡촌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이종사촌형. 이제는 멀고 먼 옛 이야기.
어느 해이던가, 어머니와 함께 인동 고모님댁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야야, 이 집이 너가 태어난 곳이다” 말씀하셨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택아, 너는 어릴 때 잠자기 전에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한테 ‘할매요! 나는 자누매’ 하고 잤는데 기억나나?” 하시던 어머니 말씀. “할머니는 생각나는데 제가 말한 건 기억이 안나요. 어머니.” 천사와 같았던 어머니, 어머니 사시는 하늘나라는 세상의 고통과 걱정근심 없겠지요?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행복 맘껏 누리세요. 어머니!
어릴 적 뛰놀던 곳,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학교 다녀온 누나가 책보를 툇마루에 내던져 놓고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주던 기억, 벼 익어가는 들판에서 메뚜기 잡던 기억, 누나와 함께 소를 몰고 뒷산 언덕에 올라가서 놀다가 소를 잃어버려 강가를 헤매며 소를 찾던 기억, 친구와 함께 도랑물 건너 인동국민학교 찾아가서 창문 너머로 교실에 있는 누나를 불러보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고모님과 이모님, 외삼촌, 사촌형, 이종사촌 등 친가 외가 가깝고 먼 친척들이 살아가고 있었던/있는 군위군 효령면 화계리, 부계면 창평리(구방동), 산성면 백학리, 팔공산 대율 한밤마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화본역 그리고 대구, 왜관, 동명, 의흥, 봉림, 우보, 탑리..... 낯익은 지명들을 떠올려 본다.
그나저나 칠곡 인동 우리집 뒷집에 살던 죽마고우(竹馬故友) 영근이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을까? 친구의 누나 이름은 우영옥이었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죽마고우 우영근, 그 친구는 함께 뛰놀던 어릴 적 일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런지... 지금은 그저 그때 일들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평안해지고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대구 근대화 거리 골목투어는 이렇게 어릴 적 옛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끝이 났다.
2013.05.23 글.사진=김영택
<계산성당>
[2013] 대구 근대문화골목 산책(2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계산예가, 계산성당
대구 도심 한복판 현대화의 거대한 파고 속에
힘겹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어 더욱 반가운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에 섰던 서상돈의 삶의 터전
대구직할시 중구 계산동 (지하철 1호선 반월당역)
<2013.05.19>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땅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는냐 누가 부르더냐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 자락을 흔들고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혼자 어께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도 보고 싶다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흙을 발목이 시도록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무엇을 찿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아마도 몸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대구 근대화 거리 골목 산책
☆ 동무생각 /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百合)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2. 더운 백사장에 밀려들오는 저녁 조수(潮水)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3. 서리바람 부는 낙엽 동산 속 꽃진 연당에서 금어(金魚) 뛸 적에
나는 깊이 물속 굽어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꽃진 연당과 같은 내맘에 금어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4. 소리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街燈)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최초 작성일 2013.05.19 / 수정한 날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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