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궁궐 탐방 (2) 창경궁
자연미와 왕실생활이 조화를 이룬 궁궐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 창경궁의 중심 부분이 동향이기 때문에
정문인 홍화문도 동쪽에 세워졌습니다.
1484년(성종 15년)에 창건,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616년(광해 8년)에 재건되었습니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좌우에 한 쌍의 십자각을 세워
품격 높은 대문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창덕궁 돈화문이 5칸인데 비해 홍화문은 3칸의 작은 규모이지만
아담하면서도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보물 제386호)
* 창경궁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창덕궁과 경계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하였으며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칭하였습니다.
동양의 궁궐이 보통 정전을 남향으로 배치하는데,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입지여건상 동향으로 짓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 이처럼 창경궁은 자연지형을 고려하면서도 기능과 용도에 따라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조성하였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감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습니다.
왕조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일제의 훼손에 의해
왕궁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됩니다.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부분에 도로를 개설하여 맥을 끊었습니다.
*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전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 홍화문은 임금이 친히 나가 백성들과 대면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직접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대신들은 균역을 반대하였지만
백성들이 찬성하자 영조는 백성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으로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는데
<홍화문 사미도>라는 기록화에 그 정경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9년 만에 돌아옵니다.
이때 백성들이 홍화문 앞까지 길을 가득 메우고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나라에 머무르는 동안 소현 세자는 단순한 인질이 아니라
외교관의 역할을 해냈으며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접하면서
장차 조선을 새롭게 변혁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귀국한지 두 달 만에 갑자기 병이 나,
병석에 누운지 3일만에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당시 소현세자는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뱃속에서는 피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청나라의 신임을 받고 있던
세자를 독살했으리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소현 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근대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홍화문을 통과하면 명당수인 금천이 흐르고
그 위에 500년도 더 된 옥천교(보물 제386호)가 놓여 있습니다.
다리 난간 아래 홍예(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궁궐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도깨비 상을 조각하였습니다.
*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으로 들어갑니다.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으로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렀던 정전입니다.
1484년(성종 15년)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증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습니다. 이는 애초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자은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입니다.
명정전은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13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에게는 왕실의 웃어른들이 많았습니다.
성종은 세조비인 할머니 정희왕후, 예종의 비인 숙모 인순왕후, 어머니 소혜왕후
형 월산대군 등 서열 높은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해
생일잔치, 경로잔치 등 각종 잔치를 명정전에서 자주 열었습니다.
* 문정문을 지나 문정전으로 들어가 봅니다.
* 문정전은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입니다.
정전인 명정전과 등을 돌리고 있는데,
이런 특이한 배치구조는 다른 궁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762년 문정전 앞뜰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은 어릴 적부터 노론을 싫어했던 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영조에게 온갖 모략을 고했습니다.
결국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기에 이릅니다.
문정전 앞뜰에 놓인 커다란 뒤주에 갖혀 한여름 더위와 허기로
8일 동안 신음하던 세자는 28세의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했습니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 후 그를 애도한다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곳입니다.
영조의 친필 현판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
* 함인정은 남향에다 앞마당이 넓게 트여 있어 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습니다.
* 경춘전과 환경전은 통명전, 양화당과 함께 창경궁의 내전을 이루는 침전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왕과 왕비의 일상생활과 생로병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경춘전은 성종이 1483년에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대비의 침전입니다.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많은 왕후들이 여기서 승하한 것으로 보아
대비뿐 아니라 왕비와 세자빈도 많이 사용한 듯 합니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탄생전'이라고 친히 쓴 현판을 걸기도 했습니다.
* 환경전은 왕이나 세자가 기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의녀들 중 유일하게 왕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이가 대장금입니다.
대장금은 1515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출산을 맡았고
1522년 자순대비의 병을 치료한 후 이 공으로 중종의 치료를 전담하게 됩니다.
중종은 오랫동안 앓아오던 풍증과 합병증으로 1544년 환경전에서
승하하였습니다. <중종실록>에는 1524년부터 1544년까지
20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대장금의 진료 기록이 나옵니다.
* 양화당은 내전의 접대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인조가 환도하면서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입니다.
*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에 정교하게 돌난각을 두르고 돌다리를 놓았습니다.
* 궁녀였던 장옥정은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고
왕자 균을 출산하여 희빈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숙종대는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당파간 정쟁이 가장 심했던 시기입니다.
균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서인을 격침하고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시켰다가
서인들이 민씨를 복위시키는 과정에서는 남인들을 제거합니다.
왕비까지 되었다가 다시 강등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꼭두각시와 동물들의 사체 등을 동명전 주위에 묻어 두었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으니 수많은 풍문과 일화를 남긴 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 통명전 옆 뜰에는 <병아리꽃나무> 하얀 꽃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 이 문을 통해 창덕궁으로 곧바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 창덕궁과 달리 관광객이 적은 창경궁은 그래서 더욱 한적하고 고즈넉합니다.
* 어릴 적 가장 많이 와 본 창경궁, 오늘따라 더욱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천문의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입니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청동의 오목판 안쪽에는 일곱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시각선이라고 합니다.
바닥에는 열세 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냅니다.
* 조팝나무가 궁궐의 아름다움을 더 해줍니다.
* 1688년에 축조된 창경궁 관천대는
대 위에 소관의를 설치하여 천체를 관측하던 시설입니다.
계단과 난간만으로 구성한 건축물로
간결하고 힘찬 조형미가 느껴집니다.
* 귀룽나무가 하얀 꽃을 가득 매달고 있습니다.
* 궁궐의 온갖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란 300년 된 회화나무.
*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연리목을 이루고 있습니다.
* 백송, 원래 고향은 중국 베이찡 부근이며 조선 왕조 때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은 것이 여기저기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성장이 매우 느리고 번식이 어려워 그 개체수가 많지 않습니다.
* 춘당지는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뒤쪽에 있는 작은 연못이 조선 왕조 때부터 있었던 본래의 춘당지입니다.
* 면적이 넓은 앞쪽 연못은 원래 왕이 몸소 농사를 행하던 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임금이 친히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풍년을 기원하였습니다.
*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목재와 철재 그리고 유리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입니다.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쳐하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하에
일본인들이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은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의 온실이었습니다.
1986년 창경궁 복원 후 국내 자생 식물 전시하고 있습니다.
2004년 문화등록재 제8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식물원 앞 뜰에는 노란 황매화 꽃이 한창입니다.
꽃이 겹꽃인 품종을 죽단화라고 부르는데
꽃이 탐스러워 황매화보다 흔하게 식재하고 있습니다.
* 병아리꽃나무도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봄날을 즐기고 있습니다.
* 한적하고 고즈넉한 궁궐을 뒤로 하고 번잡한 세상 속으로 다시 나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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