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갈고리 들고 숲길에 서 있다가.. (daum.net)
추석연휴에 남양주 천마산을 오르다 도둑놈의갈고리를 만났습니다. 요즘 수도권 지역 산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열매 끝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있습니다. 이 갈고리로 사람 옷이나 짐승에 붙어 씨앗을 널리 퍼트리는 전략을 쓰는 식물입니다. 험상궂은 이름은 이런 방식으로 씨앗을 퍼트리는 것을 도둑에 빗대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씨앗이 꼭 선글라스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요즘 이름을 지으면 선글라스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둑놈의갈고리는 꽃이 작은 나비 모양으로 다닥다닥 피는 야생화입니다. 가늘고 긴 가지에 세 장의 잎이 달립니다. 작긴 하지만 그런대로 예쁜 꽃이 피고 잎도 콩잎(이 식물은 콩과 식물)처럼 평범하게 생겼는데, 열매와 이름이 정말 독특합니다. 도둑놈의갈고리는 3출엽으로 잎이 석장씩 나는데, 큰도둑놈의갈고리는 잎이 5~7개씩 달려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도둑놈의갈고리처럼 숲길에서 갈고리를 들고 기다리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면 재빨리 갈고리를 걸어 씨앗을 이동시키는 식물들이 더 있습니다. 파리풀, 짚신나물, 큰뱀무, 멸가치 등이 그런 전략을 쓰는 식물입니다. 이들을 주로 숲길이나 등산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여름에 산길에서 가장 많이 보는 꽃을 고른다면 파리풀, 짚신나물이 빠지지않을 것입니다. 파리풀은 7∼9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핍니다. 하지만 꽃이 작아서 주목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꽃입니다. 자세히 보면 화관은 입술을 벌린 모양인데, 윗입술은 얕게 2개로, 아랫입술이 3개로 갈라진 모양입니다. 꽃이 진 후 달리는 열매는 끝부분에 갈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파리풀이라는 이름은 뿌리 즙을 종이에 먹여서 파리를 죽이는데 썼다고 붙인 이름입니다.
짚신나물도 노란색 귀여운 꽃이 핍니다. 짚신나물 꽃은 요즘도 볼 수 있습니다. 가늘고 긴 꽃대에 작은 노란 꽃들이 벼이삭처럼 줄줄이 달립니다. 파리풀처럼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꽃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쁜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짚신나물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맥이 주름진 것이 짚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큰뱀무도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6~8월 꽃 피는 장미과 여러해살이풀인데, 등산로를 따라 수없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짚신나물과 큰뱀무도 열매 위부분에 갈고리 가시를 달고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멸가치도 숲길에서 꽃과 열매가 정말 예쁘지만 무심히 지나치는 꽃 중 하나입니다. 대개 산길을 따라 쭉 나타나는데, 흔하고 평범하게 생겨서 처음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식물이기에 이렇게 많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름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식물입니다.
멸가치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흰색 계통의 꽃을 피웁니다. 꽃이 지고 방사상 열매가 나타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요즘 이 작은 방망이 같은 열매에 끈적끈적한 돌기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바지자락 등에 붙어 이동하려고 벼르고 있는 것입니다. 쇠무릎,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미국가막사리, 주름조개풀 등도 같은 방식으로 씨앗을 퍼트립니다.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접착포)’는 도꼬마리 열매가 동물에 잘 달라붙는 것을 보고 ‘생체모방’한 것입니다.
멸가치가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런 쓸모(가치)가 없어서 멸가치’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꽃도 잎도 열매도 어떻게 쓴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멸가치 어린잎은 취나물처럼 먹기도 한답니다.
갈고리 식물들이 지나가는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해 씨앗을 퍼트리는 전략은 대성공한 것 같습니다. 산길에서 이들을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식물들이 어떻게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할 생각을 했는지, 그런 전략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글=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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