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원하지 않았지만 이웃이 돼버린 모기 (daum.net)
풀은 인류의 친구다. 양과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도 풀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본격적으로 인간 집단에 들어온 밀과 귀리도 역시 풀의 한 종류다. 태양을 향해 높이 오른 나무와 달리 빠르게 멀리 퍼지는 습성을 지닌 풀은 거침없이 땅을 파헤치는 인간을 특히 좋아하고 따른다. 자못 비장한 차전자(車前子)라는 별명이 있는 질경이는 사람이나 소가 끄는 수레바퀴에 깔릴 때 씨앗이 튀어 나가 새싹을 틔운다. 놀랍다.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개간하는 인간을 쫓아 자신의 영역을 넓힌 모기도 인간을 따른다.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윙윙 날갯짓하며 동행을 청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때 우리는 거부하는 몸짓으로 팔을 휘젓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이런 동작은 열과 몸 냄새를 더 멀리 퍼뜨릴 뿐만 아니라 모기에게 옷으로 덮이지 않은 피부가 여기 있다는 시각적 지표를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릴 때 우리는 뇌염모기를 피해 밤마다 국방색 모기장 안에서 잠을 잤다. 전쟁 벌이기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나 다를까 모기와 전쟁도 불사했다. 모기가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매개하는 질병을 운반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황열병, 뇌염이 대표적이다. 아프리카에서 스리랑카, 미국과 중국 남부, 베트남, 수에즈 운하 등 적도 부근 지역에서다. 박멸을 목표로 한 이 전쟁에서 인간은 아직 승리하지 못했다.
모기가 사람을 죽였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원전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도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중부 캄파냐 습지와 중국 남부에서도 수많은 병사가 말라리아 감염 탓에 비장(spleen)이 부풀어 죽었다. 감염된 환자의 혈액이 파괴되고 염증이 과도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기는 거대 공룡의 피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공룡이 활보하던 쥐라기에, 날개를 단 채 등장한 모기는 기생 병원균과 제휴하고 차근차근 큰 동물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알을 품은 암컷 모기가 새끼를 먹이고자 공룡의 두꺼운 피부를 뚫는 순간 말라리아 열원충이 그 빈틈에 편승했다. 약 1억3000만년 전 일이다.
언뜻 보면 모기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2500종의 모기 중 흡혈 습성을 가진 종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말라리아 열원충에 감염되면 모기도 죽을 수 있다. 알 키우느라 넘치도록 동물의 피를 먹은 무거운 몸으로는 날기도 힘들고 벽에 뿌린 DDT를 잘못 먹어 죽는 일도 흔했다. 게다가 인간은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나는 모기를 떨어뜨린다. 교활한 열원충은 솔잎처럼 방향성 화합물을 만들어 애먼 모기를 꾀기도 한다. 단세포 열원충은 지금은 거의 퇴화했지만 엽록체를 갖고 있다. 식물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물 조직과 혈액에 의탁해 먹잇감을 얻도록 생활 방식을 바꾼 말라리아는 이제 더는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열원충의 성장 속도와 적응력은 사뭇 놀랍다. 사람을 무는 순간 모기 주둥이에서 빠져나온 실 모양 말라리아 포자, 10여마리는 곧장 간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기생충은 탈바꿈하며 숫자를 늘린다. 무기인 항체를 만드느라 헛된 일주일을 쓴 숙주는 아랑곳없이, 채비를 마친 수만마리 기생충은 홀연히 간을 떠나 적혈구에 안착한다. 글로빈 단백질 가득한 배양기인 적혈구 안에서 열원충은 수조개로 그 수를 불린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많은 수다.
이제 발열과 오한을 반복하면서 침상에 누운 환자는 모기를 쫓을 기력도 없다. 말라리아나 모기는 모두 쾌재를 부르며 또 다른 숙주 무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구 곳곳, 폐타이어 속 고인 물에서 모기는 알을 낳는다. 사하라 아래 서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죽는다. 최근 들어 모기에 편승한 악질 바이러스와 기생충의 숫자는 더욱 늘었다.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산모를 위협하고 황열병은 아시아를 호시탐탐 노린다. 새 숙주는 모든 기생충의 꿈이다. 기생생명체는 날아다니는 곤충, 철새와 가금류 그리고 앉아서도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비행기를 선호한다.
지구 대기권이 태양열을 가두고 물 순환을 가속하자 지구는 덥고 습해졌다. 덕분에 북상한 모기들은 밀도 높은 대도시 지하철과 정화조 안에서 겨울을 난다. 비록 인류가 원하지는 않았을망정 모기는 인류의 뗄 수 없는 이웃이 되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ㅣ경향신문 2022.08.11
/ 2022.09.0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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