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박주가리는 어떻게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까 (daum.net)
여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폭염에 외출하기 겁이 날 정도로 더운 날들이 연일 이어집니다. 거기다 때때로 비가 쏟아지며 습도가 강해져서 더욱더 불쾌지수가 높아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것도 잠시. 입추도 지났으니 곧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겠지요. 그 전까지 얼마간은 더위를 견뎌야 할 것 같지만요. 이렇게 더운 시기에도 식물들은 자신의 리듬대로 꽃을 피웁니다. 한여름에 피는 꽃들도 여러 가지인데요. 이번에는 공원이나 길가에 놓인 울타리를 기어 올라가는 박주가리에 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박주가리는 8월 한여름에 흰색이나 연한 보라색으로 꽃을 피워요. 곁을 지날 때면 칡꽃과도 비슷한 향이 나는데 그 향기가 아주 좋죠. 아마도 여름엔 능소화·원추리·참나리를 비롯해 화려한 꽃들이 꽤 많이 피니 그들과 경쟁하려면 강렬한 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꽃이 진 뒤에는 생일 축하나 작은 파티에 쓰는 폭죽처럼 길쭉하게 고깔 모양으로 열매가 달리는데요. 늦가을에 열매가 익어서 벌어지면 그 안에 민들레 씨앗처럼 깃털이 달린 200여 개의 씨앗이 바람에 날아갑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어린이들 장난감으로도 인기가 있는 열매이기도 하죠.
잎은 하트 모양인데, 잎을 따거나 줄기를 꺾으면 흰 우유를 닮은 유액(乳液)이 나와요. 이 유액을 곤충들이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하죠. 박주가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인 셈이에요. 그래서 웬만한 곤충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산책하다 보면 누군가 갉아먹은 흔적이 있는 잎을 발견할 수 있어요. 도대체 누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음식에 입을 댄 걸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관찰해 보면 아주 귀엽고 푸른 남색 빛깔로 반짝이는 멋진 곤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청람색잎벌레’라고 하는 곤충입니다. 중국청람색잎벌레는 박주가리가 만든 독을 해독하는 해독제를 만들어 내서 소화를 해내요.
세상 모든 생물에게는 대체로 천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자신을 잡아먹는 생물 말이죠. 다른 식물들의 경우도 비슷해요. 저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을 만들지만 그 독을 해독하는 곤충들이 또 있지요. 식물의 입장에서는 독을 더 강하게 하면 어떤 곤충도 자신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곤충은 모든 해독제를 다 만들어서 모든 식물을 다 먹어도 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독을 만들거나 독을 해독하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태보다 더 강한 독을 만들기 위해선 식물이 만들어낸 양분 중에서 독을 생산하는 에너지로 쓰이는 양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생장이나 결실 등에 쓰이는 에너지 양이 줄어 차질이 생길 수 있죠. 곤충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잎을 먹는 곤충도 있지만 대부분 한두 종류의 식물 잎을 주로 먹어요.
그러다 보니 식물과 곤충의 관계가 마치 짝꿍처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어느 한 종류의 식물이 사라진다면 식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동물도 함께 사라질 수 있는 거죠. 그런 이유로 지구상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어야 해요. 사실 식물의 입장에서는 곤충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잎을 갉아먹기는 하지만 이후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물은 그저 살짝 깨물고 ‘앗! 이건 못 먹겠다’하고 물러나길 바라는 것이지 죽이는 것까지 생각하지는 않죠.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중국청람색잎벌레에게 있습니다. 이 곤충은 박주가리가 만든 독을 몸 안에 축적해 두었다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새에게 사용해요. 새도 중국청람색잎벌레를 깨물고선 ‘앗! 잘못 먹었다’ 하고 뱉어낸다고 합니다.
즉, 천적을 이기기 위해 천적이 싫어하는 것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셈이지요. 우리에게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저마다의 장점들이 있지요? 그리고 간혹 다른 이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내 입장에서 차곡차곡 쌓아두면 이후 내게 좋은 기회를 선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불편함이나 힘듦을 이후 내게 도움이 될 장점으로 생각하고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ㅣ중앙일보 2022.08.15
/ 2022.09.0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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