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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혼불' 강실이가 익모초 보고 울컥한 이유

푸레택 2022. 8. 28. 18:05

[김민철의 꽃이야기] '혼불' 강실이가 익모초 보고 울컥한 이유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혼불' 강실이가 익모초 보고 울컥한 이유

요즘 언덕이나 풀밭에서 잎이 아주 길쭉하고 홍자색 꽃이 층층이 달린 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여성)를 이롭게 하는 풀, 익모초(益母草)입니다. 이 풀은 생리통 등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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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덕이나 풀밭에서 잎이 아주 길쭉하고 홍자색 꽃이 층층이 달린 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여성)를 이롭게 하는 풀, 익모초(益母草)입니다. 이 풀은 생리통 등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질병에 좋다고 합니다. 또 원기를 회복하고 식욕을 돋우는데도 좋아 옛날엔 입맛이 없어 식사를 못할 때 익모초를 절구에 찧거나 달여 먹었다고 합니다.

익모초. 잎이 길쭉하고 홍자색 꽃이 층층이 달렸다.

익모초는 들이나 길가, 풀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쓰임새가 많아 집안에 한두 개체쯤 심어 놓고 필요할 때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시골에 가면 집안 마당 가장자리에서 익모초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모초는 7~9월 꽃이 피는, 꿀풀과 두해살이풀입니다. 높이 1m이상 자라는 것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쑥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줄기를 돌려나는, 꽃잎 끝이 벌어진 통꽃이 층층이 피는 점이 다릅니다. 잎 모양도 차이가 있습니다. 마주나는 익모초 줄기잎은 아주 길고, 3개로 가늘게 갈라진 다음 다시 2∼3개로 갈라지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익모초 무리.

일부 지방에서는 익모초를 눈비엿, 눈비얏, 암눈비앗 등 고유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새벽에 이슬이 내려앉은 익모초를 그대로 채취해 즙을 내라거나 생즙을 낸 다음 하룻밤 밤 이슬을 맞춘 후 마시라고 하는데, 익모초의 쓴맛을 줄이려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최명희 소설 ‘혼불’에서도 여주인공 강실이가 익모초를 보고 어머니가 생각나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단오날 정오에 캔 약쑥 익모초가 제일 좋지. 약효가 그만이라.” 하며 들에 나가 어울려 캐 온 약쑥과 익모초를 헛간 옆구리 그늘에다 널어 말리던 어머니. (중략) 그래서 여름날의 무명옷 올 사이로는 익모초 진초록 쓴맛이 쌉쏘롬히 배어들어, 오류골댁이 소매를 들어 올리거나 슥 옆으로 지나칠 때, 또 가까이 다가 앉을 때면 냇내처럼 그 쓴내가 흩어졌다. 익모... 그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에이어 강실이는 우욱 치미는 울음을 삼킨다.> (‘혼불’ 7권)

당시 강실이는 거멍굴 상민인 춘복이에게 겁탈을 당해 아이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처지를 알면 어떤 시련을 겪고 어떤 마음 고생을 할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익모초를 보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식물로 속(屬)이 같은 송장풀이 있습니다. 송장풀은 꽃색도 연한 분홍색인데다 잎이 긴 타원형이어서 익모초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송장풀은 이름이 좀 그렇지만 꽃은 예쁩니다. 왜 이런 이름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설만 분분합니다. ‘송장’과는 관련이 없는 것은 분명해 차라리 ‘개속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송장풀. 익모초와 비슷하나, 꽃색이 연한 분홍색이고 잎이 긴 타원형이다.

지난 주말에도 시골에 가보니 길가에서 익모초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긴 잎과 층층이 달린 홍자색 꽃이 요즘 한창이었습니다. 굳이 즙을 내 먹지 않더라도, 싱싱한 익모초 잎과 꽃만 보아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