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따위 초월하고 사는 자. 생판 모르는 나라에서 엄벙덤벙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포장도로를 쌍지팡이 짚고 달리는 나. 담뱃갑의 비극적인 사진을 보고도 생사해탈 애연가에 비하면 하수급이겠다. 그걸로 위안을 삼고, 오빠 달려~. 멀리 서쪽 부둣가, 싱싱하다는 말에 속아 ‘오늘의 생선’ 한 접시를 주문. 기대와는 달리 뻔한 ‘피시 앤 칩스’였다. 밍밍하고 심심한 요리. 깨작깨작 먹다보니 얼큰한 우럭매운탕이 간절해라. 한인 식당 한 군데 없는 나라에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럭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우럭 매운탕.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묻어나는 매운탕 냄새에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우럭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제는 우럭 매운탕을 먹으러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출장도 뭣도 아니고 출가가 너무 길었나보다.
바이킹은 더러 해적도 있었지만 기본이 어부들. 초기 예수 무리도 물고기와 어선 마크를 달고 다니던 주로 어부들. 아랫녘에는 ‘이크티오파기’라 불리는, ‘물고기 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자리를 잡은 족속들. 늑대 동굴이나 고래 뼈다귀로 지은 천막집에 살며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다. 말리고 염장하고 훈제를 통한 대량보관이 가능해지자 단순한 생계형 어부들에서 졸부들이 되어갔다. 암만 농협 축협 하지만 수협 조합장이 으뜸 아니던가. 청어와 대구를 잡으러 덴마크와 노르웨이 어선들이 북해를 뒤지고 다닐 때 도둑갈매기나 귀염둥이 퍼핀은 일용할 양식이면 족했다. 피시 앤 칩스를 일용 양식으로 주신 하늘에게 반기를 든 한국인. 난데없이 우럭 매운탕을 탐하고 있어라. 하늘을 우러러 하늘 우럭. 둥둥동동 우럭이 떠다니넹.
슈퍼마켓에서 반가운 건어물을 만났다. ‘하르드 피스쿠르’라는 대구포. 요게 짭짤하면서도 고소하다더라. 몇 봉지 쟁여놓고 마른안주 삼아 맥주 세례식. 선수 용어로 멱을 감고 있다. 귀한 사람을 덜컥 잃으면 대신할 누가 있겠느냐만, 주전부리야 무엇으로든 대체가 가능하지. 이걸로다가 어떻게든 몇 밤은 더 버텨보자꾸나.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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