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전도사들은 기가 막힌 형편에도 긍정하라고 권한다. 불상과 십자가가 요즘 미꾸라지들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되는 이들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한 명이라도 어떻게 종교생활을 그만둘까봐 염려의 소리. 엄밀히 말하면 헌금을 그만 낼까봐 걱정인 게다.
긍정전도사들과 적폐시대에 머물러 살 요량이 아니라며 손에 묻는 때나 좀 닦을 일이 아니라 매연을 뿜는 굴뚝을 통째 손봐야 한다. 준엄한 법을 세우고 약속들을 지키고 건강한 틀을 갖춰나가야 한다. 무한 긍정은 세계를 망친다. 부정과 의심은 고정된 세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간첩은 친구·가족들 안에 있으니 늘 조심(훗~). 의심하고 살펴보고,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매일 께름칙한 힐링의 글보다는 교양이 되는 책을 한 줄씩은 읽자.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면 비싼 값을 치르면 된다. 한 치과병원에 앓는 이를 뽑으러 온 손님이 따졌다. “몇 초면 뚝딱 뽑는데 뭐가 이리 비싸요.” “네 손님. 우리 병원은 손님 같은 분을 위해 아주 저렴하게도 해드려요. 한 시간 정도 아주 느리게 뽑아드릴 수 있습니다.”
나만 보아도 당장 ‘아니요’를 못해 질질 끌려다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용돈벌이 일도 그렇다. 싫어, 아니야만 몇 초 말했어도 가난하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련만.
여행 중에도 만사를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고 주의하면서 걸어야 노상강도를 피할 수 있다. 궂은일을 자주 당하는 오지 여행. 조금만 방심했다간 카메라 가방을 도난당한다. 나도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를 인도 오지에서 잃어버렸다. 책 속에 있는 현자들이 사는 세상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미안하지만 이후로 누구에게도 등짐을 맡기지 않고 내가 진다. 그러다보니 짐을 줄이게 되고 어깨는 가벼워졌다. 카메라 욕심도 버렸고, 김치통조림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래도 굶어죽지 않아. ‘싫어, 아니야’라는 말을 단호하게 잘해야 하겠다. 부정적인 놈으로 찍히니 자주 할 말은 못되지만. 이 지독한 늦더위에게도 말해주고 싶고 북상 중이라는 태풍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하늘이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 하겠지만.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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