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임의진의 시골편지] 연탄난로

푸레택 2022. 8. 5. 20:10

연탄난로 [임의진의 시골편지] (daum.net)

 

연탄난로 [임의진의 시골편지]

[경향신문] 이른 김장철. 이 집 저 집에서 구수한 깨 볶는 냄새. 배춧잎의 새하얀 고갱이 향기가 또 얼마나 다디단지. 나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베짱이. 밭에선 할매들이 배추를 뽑아 다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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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김장철. 이 집 저 집에서 구수한 깨 볶는 냄새. 배춧잎의 새하얀 고갱이 향기가 또 얼마나 다디단지. 나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베짱이. 밭에선 할매들이 배추를 뽑아 다듬고, 나는 소나무를 성탄트리 삼아 별과 방울을 매달았다. 팝스타 스팅은 성탄 캐럴을 한장 냈는데, <겨울밤>이라는 음반. 앨범에는 팬들에게 띄운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녹음실에서 한해 겨울을 보냈어요. 피렌체 북부지방의 찬바람이 매서웠죠. 일곱명의 음악가들과 모직 코트를 껴입고 주방 난로에 둘러앉아 머그잔으로 손을 데웠죠. 녹음기간 11월부터 3월까지 그 지방의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 했어요. 어찌나 추운지 입김이 풀풀 나오고 길은 얼음장이었죠. 나는 어릴 적 깜깜한 새벽에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하면서 자랐어요. 하얗게 쌓인 숫눈길을 걸었죠. 우유배달을 마쳐도 해가 뜨지 않았죠. 우리 집의 유일한 난방장치는 연탄난로였어요. 전등을 끄고 앉아 난로를 혼자 바라보곤 했죠. 붉게 타오르는 연탄과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하염없이 쳐다봤어요.”

나도 연탄난로를 보고 자랐다. 아래층 위층 두개의 연탄을 불구멍이 보이도록 갈아 끼우는 일.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고갤 돌려봐도 별수가 없었다. 콧속으로 매캐한 무엇이 훅 들어오곤 했다. 새벽예배를 위해 교회 난로는 살리고 목사관의 연탄보일러 불씨는 죽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은 아침 내내 추위에 떨었다. 미안했던지 목사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코코아를 컵에 가득 담아 건네시곤 했다. 아버지가 부엌에 나타나서 하신 일은 자신이 즐기시던 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코코아를 타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그 코코아 맛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연탄보다 연탄과 맞바꾼 코코아가 훨씬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케이크도 한조각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울케이크 한조각 주세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제발요. 이 집의 주인과 안주인, 복받으세요.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 모두 무럭무럭 자라길. 마구간의 가축과 문 앞의 개도 열배의 축복이 있길.” 스팅의 캐럴 ‘소울케이크’로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신,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8.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