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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여름 휴가 제주서 만나는 보랏빛 향기, 순비기나무

푸레택 2022. 7. 28. 10:42

[김민철의 꽃이야기] 여름 휴가 제주서 만나는 보랏빛 향기, 순비기나무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여름 휴가 제주서 만나는 보랏빛 향기, 순비기나무

여름휴가 하면 어떤 꽃이 떠오르는지요. 아열대·열대 지역을 다녀온 분들은 플루메리아·부겐빌레아·알라만다 같은 이국적인 꽃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가장 먼저 제주도 해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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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하면 어떤 꽃이 떠오르는지요. 아열대·열대 지역을 다녀온 분들은 플루메리아·부겐빌레아·알라만다 같은 이국적인 꽃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가장 먼저 제주도 해수욕장 주변에 많은 순비기나무 꽃이 떠오릅니다. 제주도에 여름휴가를 가서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보라색 꽃이 참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름휴가철 제주도 해안가에 핀 순비기나무꽃.

요즘 소셜미디어와 야생화 사이트 등에 순비기나무 꽃이 자주 올라옵니다. 순비기나무 꽃이 피는 계절이 온 겁니다. 순비기나무는 바닷가 모래땅 등에서 자라는 키작은나무입니다. 황해도 이남 바닷가에 자란다고 하니 전국 바닷가에서 볼 수 있겠지만 주로 제주도와 남부지방 해수욕장 주변에서, 모래땅이나 바위틈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만, 일본, 태평양 지역 섬과 호주 등에서도 자란다고 합니다.

나무치고는 두 뼘쯤 높이로 작지만 보면 볼수록 개성 넘치는 나무입니다. 꽃은 7~9월에 연보라빛으로 피는데, 입술을 내민듯한 형태와 꽃술이 길게 나온 모양 등이 개성 만점입니다. 두툼한 잎 전체엔 회색빛 나는 흰색 잔털이 퍼져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리장나무·작살나무·버베나·란타나 등과 같은 마편초과입니다.

순비기나무 줄기는 옆으로 뿌리줄기를 뻗으면서 퍼져 군락을 이룹니다. 한꺼번에 피지 않아 대개 꽃이 군데군데 피지만 운이 좋으면 동시에 꽃이 피어 청보랏빛 카펫을 만든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자라지만 보랏빛 꽃들이 여름 정원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비기나무라는 이름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주 해녀가 물질하다 올라와 세차게 내는 숨소리를 ‘숨비소리’ 또는 ‘숨비기소리’라고 하는데, 이 소리와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해녀들이 물질로 생긴 두통을 순비기나무 열매(만형자·蔓荊子)를 먹어 치료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있고, 해녀가 잠수하는 동작인 숨비기처럼 모래땅 속으로 들어가는 나무라는 뜻이라는 견해도 있더군요. 어떤 것이 맞든 제주 해녀와 관련이 많은 나무인 것 같습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해녀들의 애환을 지켜본, 해녀들과 함께 해온 나무인 것입니다.

이번 여름 휴가 때 순비기나무꽃을 만나면 꼭 냄새를 맡아보세요. 싱그러운 향기가 반길 겁니다. 꽃만 아니라 식물체 전체에서 순한 박하향이 납니다. 순비기나무는 박하를 비롯해 배초향, 꽃향유, 백리향 등과 함께 우리 토종 허브 중 하나입니다. 해안에서 벗어나 내륙에서도 자라는 좀목형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순비기나무와 같은 속(Vitex)입니다. 좀목형도 보라색 꽃이 피고 줄기와 잎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인천수목원에 가면 순비기나무와 좀목형 둘 다 심어 놓았으니 비교하며 보면서 향기도 맡을 수 있습니다.

좀목형. 순비기나무와 같은 속이다.

순비기나무는 뻗은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밭을 덮어 바닷가에서 모래가 유실되는 걸 막아주는 고마운 식물입니다. 여기에다 개성 있는 꽃과 향기로 여름휴가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꽃입니다. 여러모로 쓸모 있고 좋은 나무인 것 같습니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7.26

/ 2022.07.2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