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더니 가로수 주변 가로세로 1m 남짓 작은 땅에도 잡초가 소복하다. 잡초라니? 항변이 들리는 듯해 그 이름을 부른다. 강아지풀, 쑥, 민들레, 까마중, 질경이, 망초, 바랭이, 왕고들빼기, 중대가리풀, 땅빈대…. 가로수 밑동을 기준으로 사람이 밟지 않는 도로 쪽 땅은 잡초가 키를 한껏 키우는데 요즘 강아지풀이 한창이고, 잘 밟히는 보도 쪽은 키를 한껏 낮추는데 포복하는 바랭이와 민들레가 바쁘다. 한여름 시야엔 배롱나무, 능소화, 수국과 무궁화꽃이 대세지만, 몸을 낮춰야만 보이는 바닥권은 강아지풀과 민들레꽃이다. 특히 강아지풀은 강아지 꼬리를 닮은 꽃이삭이 하늘하늘해 꺾어다 화병에 꽂으면 솜씨가 없어도 그럴듯하다. 강아지풀처럼 명백한 잡초의 무단 입양은 자원봉사니 꼭 시도해 보시라.
잡초가 소복이 올라오면 제거 민원이 간간이 온다. 잡초란 ‘의도치 않은 식물’인데, 예로 잔디밭에 핀 탐스러운 장미가 잡초고 장미밭에 삐죽이며 올라온 잔디가 마찬가지로 잡초다. 기화요초가 잡초에 햇볕과 양분을 빼앗기니 적절한 제거나 조절도 필수지만,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순기능도 소중하다. 게다가 거대한 가로수는 발치에서 벌어지는 잡초의 향연에 초연하다. 햇볕과 뿌리의 위계가 다른 데다 외려 잡초 덕에 겉흙이 잘 일궈지고 작은 생명이 숨어들며 미기후도 조절된다. 지저분하다는 지적만 아니면 좀 뭉그적거리고픈 민원이다.
한여름 도시 열섬화에다 유럽의 이상고온, 산불과 가뭄 소식에 우울하지만, 결국 기후위기에 균열을 내는 건 잡초의, 잡초에 의한, 잡초를 위한 민주주의다. 잡초는 생물 다양성이자 생태 감수성이다. 도시 곳곳의 균열마다 크랙 가든(Crack Garden)을 만들고 씨앗 폭탄을 던지는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을 넘어 사람의 간섭마저 의도적으로 배제한 재야생화(rewilding) 개념이 심각히 대두되는 이유다. 닥친 위기를 함께 넘기 위해, 잡초에도 한 표!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ㅣ국민일보 2022.07.27
/ 2022.07.2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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