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임의진의 시골편지] 흉가

푸레택 2022. 7. 26. 13:31

[임의진의 시골편지]흉가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흉가

[경향신문] 삼월이라 삼짇날, 새 풀을 밟으면 꽃바람이 난다지. 아침부터 부지런한 농부 말고 군인들이 보였다. 옆 동네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데, 콩 볶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한 달에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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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라 삼짇날, 새 풀을 밟으면 꽃바람이 난다지. 아침부터 부지런한 농부 말고 군인들이 보였다. 옆 동네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데, 콩 볶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한 달에 두어번 이질적인 총소리. 그래도 축사의 냄새보다는 낫지 싶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치기를 기다려본다.

우리나라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 길거리에 가보면 ‘대포집’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선 폭탄주를 아무나 제조한다. 건너편 식당은 부대찌개. 길에 보면 총알택시가 쓩쓩 날아다닌다. 미세먼지 연막탄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할 만큼 자욱하다. 무슨 가공할 미사일이 있어 미세먼지를 헤치고 명중을 하겠는가. 또 모두가 핵가족으로 각지에 흩어져 산다. 핵가족은 독재 아니라 독재 할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는다. 여기다가 공포의 흉가들이 마을마다 버티고 있다. 세기의 강심장들도 나가자빠진다.

우리 동네도 흉가에 폐가가 한 집 건너. 앞 동네는 너른 평지라 부자들이 별장을 짓고 난리 브루스인데 고갯마루 접어들면 노루 사슴이 기웃거리고 멧돼지가 괄괄거리는 산촌. 게다가 혼불이 출몰하는 빈집, 흉가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린다.

귀신은 자기 말만 한다. 할매들도 귀신이 되려고 자기 말만 하고 산다. 나는 글을 쓰니까 해소라도 하지만 말동무가 없으니 그러시는 거겠지. 귀신도 누가 들어주질 않으니 혼잣말로 시부렁거린다. 흉가에서는 씨부렁씨부렁 묘한 소리가 난다.

다행히 봄이면 그 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꽃바람 봄바람에 귀신도 참하고 순해지는 모양. 아가씨가 방구가 마려워 “자기야! 사랑해!” 큰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뿡 싸질렀는데, “뭐라고? 방구 소리 때문에 안 들렸어.” 무안하게시리. 귀신 소리도 봄이 오는 소리 때문에 들릴락 말락. 금방 귀신의 계절 여름 칠팔월이 올 테고 그땐 살맛나게 떠들어대려무나. 흉가라도 있어 귀신도 살고, 어쩌면 다행이지 싶다. 귀신도 못 사는 세상이 더 무서운 게지.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9.03.06

/ 2022.07.2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