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우리는 '원자들의 모임'만은 아니다 (daum.net)
재앙이 닥쳐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 후손을 위해 딱 하나의 과학 이론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일까?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론을 후손에 남길 딱 하나의 이론으로 꼽았다.
물리학은 일석이조를 훌쩍 넘어 일석백조를 꿈꾼다. 하나로 여럿을 설명할 수 있을 때,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적은 수의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물리학자는 등골이 오싹한 경이감을 느낀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고, 원자론의 과학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떠올리면, 파인만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인력이 두 원자 사이에 작용하지만, 거리가 아주 짧아지면 서로를 미는 반발력이 작용한다는 것도 파인만의 책에 담겨 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사이에는 거리에 따라 변하는 밀고 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딱딱하고 축축하고 뜨겁고, 경험하는 성질은 달라도, 얼음이나 물이나 수증기나, 하나같이 수소와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 수많은 물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고체, 액체, 기체 중 어떤 상태로 존재할지는, 분자 사이의 힘과 마구잡이 열운동의 경쟁으로 정해진다. 온도가 아주 높다면 마구잡이 열운동이 이긴다. 온도를 올리면, 분자 사이의 인력을 가뿐히 물리치고 휙휙 빠르게 여기저기로 분자들이 활발히 움직여서, 물이 수증기가 된다. 거꾸로, 수증기의 온도를 낮추면, 열운동이 줄어 느려진 분자는 주변 분자의 인력에 붙잡혀 그 곁에 머문다. 수증기가 응결해 물이 된다. 물방울은 인력으로 뭉치고 수증기는 마구잡이 열운동으로 퍼진다.
물의 온도를 낮추면 분자들은 속도가 줄어들어 주변 분자가 당기는 인력을 더 강하게 느낀다. 점점 가까워지지만 다른 분자와의 거리가 0이 될 수는 없다. 아주 짧은 거리에서는 둘 사이의 힘이 인력에서 척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아주 낮은 온도에서는, 인력에서 척력으로 바뀌는 특정 거리를 간격으로 두고 분자들이 격자 구조로 늘어서게 된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된다.
컵에 담긴 물의 표면은 아무 변화 없어 보여도 분자수준에서는 다르다. 물 표면에 있는 분자 중 어쩌다 더 빠른 속력을 가진 것들은 다른 분자가 잡아끄는 인력을 이기고 공기 중으로 뛰쳐나간다. 이런 분자들은 속력이 빠른 것들이어서, 물속에 남겨진 분자들의 운동에너지는 줄어든다. 기화하면 물의 온도가 낮아지는 이유다. 뜨거운 음식을 후후 입 바람 불며 먹을 때, 더운 여름날 마당에 물 뿌릴 때, 물리학을 떠올릴 일이다.
넓은 벌판 위 뭉게구름의 멋진 옆모습을 보니 아랫면이 판판했다. 이것도 설명할 수 있다. 햇볕을 받은 지면 가까이는 온도가 높고 위로 오를수록 온도가 낮아진다. 땅 가까이에서 온도가 높아 기체인 수증기로 변해 위로 오른 물 분자는 높은 곳 차가운 공기를 만난다. 온도가 낮은 아침에 이슬방울이 맺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도가 낮은 저 높은 곳 수증기는 물방울로 맺혀 구름이 된다. 지면으로부터의 높이에 따라 대기의 온도가 일정하게 줄어든다면, 구름의 아랫면은 판판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는 수증기가 응결해 작은 물방울이 되어 구름이 되고, 그보다 낮은 곳에서는 응결한 물방울이 기화해 구름을 이루지 못하는, 지면으로부터의 특정 높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풀잎에 매달린 작은 이슬방울,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 그리고 파란 하늘을 떠가는 예쁜 뭉게구름을 보며 물리학이 만든 자연의 경이에 전율한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다.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원자들이 서로를 잡아끌고 때로는 밀어 세상 모든 것을 만든다. 우리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파인만은 우리는 분명히 원자들의 모임이지만, 원자들의 모임‘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곁에서 잠든 사랑하는 이의 편안한 얼굴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도 나처럼 원자들의 모임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하고 유일한 원자들의 짜임이 바로 그를 이룬다. 세상 모든 것은 물리학을 위배할 리 없지만, 그렇다고 물리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 모두는 제각각 유일한 자연의 둘도 없는 경이다. 우리 각자의 비교 불가능한 소중함의 근원에는 구별할 수 없는 원자들이 있다. 구름도 저처럼 예쁜데 사람의 아름다움이야 굳이 보태 무엇 하리.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22.07.21
/ 2022.07.2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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