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소설 <이방인>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버스를 놓칠까봐 허겁지겁 뛰어갔다. 숨차게 올라탄 뒤끝에다 버스 배기통에서 나는 기름 냄새, 격한 진동, 도로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 그 모든 것들에 혼미해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를 타는 내내 졸았다. 깨고 보니 내가 한 군인의 어깨에 파묻혀 있었다. 군인은 겸연쩍게 웃으며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었다. 대답하기 쑥스러워, 가볍게 얼버무렸다.”
지난여름 동안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작곡가이자 가수 김현성 형이랑 음반 녹음작업을 했다. 음반 제목은 ‘심야버스’. 내가 지은 시들에다가 형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하는 음반. 우린 20년도 넘은 오랜 인연이다. 우정의 결실 하나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가을에 출시하고 공연도 같이할 예정이다. 이 일로 여러 번 심야버스를 탔다. 서울과 산촌을 오가면서 나도 소설 속 이방인처럼 까무러쳐 졸고는 했다. 심야버스는 늦게까지 수고한 분들이 주 고객이다.
퀘이커 신자들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가면 워너메이커의 동상이 있다. 체신부 장관까지 지낸 워너메이커는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 그는 우리나라 종로 YMCA를 지어주기도 했다. 입만 열면 4가지를 강조했는데, ‘집중해서 생각하라. 서둘러 실행에 옮겨라. 배나 노력하라. 사람이 아닌 신을 섬겨라.’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백화점을 열고 버스도 구입했다. 사람들은 승용차 대신 백화점 버스에 다투어 탔다. 이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유층이었다지.
오늘날 버스, 특히 심야버스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거 적어도 서로를 믿고 정직하게 사는 이들. 비슷한 거주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 집으로 향한다. 몰래 한몫 잡아 꿍친 돈도 없다. 자녀들은 집 가까운 동네 학교에 그냥 다닌다. 이웃집 애가 늦으면 같이 발을 동동 구른다. 버스 객석에서, 고단한 머리들 어깨에 나누며 숨소리와 땀내음을 같이 느낀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우리는 그걸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심야버스에 졸던 학생들이 끝으로 내리면 달님도 눈을 감고 잠든다.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9.08.28
/ 2022.07.1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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