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불신·분열 시대, 나의 해방촌은 어디인가 (daum.net)
ㅣ소설가 이범선 서울 남산자락 '해방촌'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보급품 상자)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오발탄’ 중에서)
학촌(鶴村) 이범선(1920∼81)의 단편소설 ‘오발탄’(1959)은 전후 한국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해방촌. 이곳은 현재 서울 용산구 용산로2가란 행정구역 명칭이 있지만 50년이 넘도록 여전히 ‘해방촌’으로 불리고 있다.
해방촌은 광복과 6·25 한국전쟁 직후 북한의 종교 탄압을 피해 월남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대개는 평안도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 복음이 융성했던 선천군 교인이 많았다. 이들은 해방촌 오거리를 중심으로 미군 폐자재와 버려진 판자 등을 주워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월남한 실향민들이 이북 지역이 해방(통일)되면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해방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실향의 공간 ‘해방촌’
‘오발탄’에 묘사된 해방촌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많이 변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사라진 자리에 2∼3층짜리 양옥이 들어섰다. 흙먼지가 날리던 비좁은 골목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하지만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과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에선 판잣집이 빼곡했던 50여년 전 해방촌의 흔적이 묻어났다.
지난 16일 정오의 햇살은 수직으로 해방촌오거리에 내리고 있었다. 성공회 용산 나눔의 집이 운영하는 ‘해방촌이야기’를 왼편으로 두고 걸어가면 ‘해방교회’의 십자가 탑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에 웅장한 석조 건물로 우뚝 서 있는 교회는 민족의 회복을 염원하는 듯한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란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1947년 7월 해방군 미군으로부터 천막을 얻어 남산 자락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해방교회의 시작이다. 방문객들은 6·25전쟁 당시 피란을 가지 않고 교회를 지키다 공산군에 납북된 허은 목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허은 목사 순교 기념비’ 앞에 잠시 머물게 된다.
해방촌오거리에서 신흥로 쪽 내리막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남산 위에 파란 하늘이 걸려 있다. 길게 늘어선 낡은 다세대주택들 너머로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했다. 그 골목길, 어느 집에선가 단말마적인 외침이 새어나왔을 듯하다.
“저 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철호는 때에 절어 마치 가죽 끈처럼 된 헝겊이 달린 문걸쇠를 잡아당겼다.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오발탄’ 중에서)
철호 가족은 전쟁으로 고향을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행복했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가자”는 외침은 더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는 정신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고향으로, 옛날로 돌아가자고 했다. 3·8선의 의미를 모르는 어머니는 고향에서 지주로서 한 마을의 주인처럼 살아왔기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해방촌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소설 후반에 철호는 택시를 타고 “가자”고 외치는데 이 외침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상실해버린 소시민의 절망을 표현한 것이다.
양심은 ‘손끝의 가시’
이범선은 ‘오발탄’에서 양심이란 가시를 빼어 버리지 못한 채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는 주인공 철호를 통해 전후 엄혹한 현실 속에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묻는다. 작가는 양심을 손끝의 가시와 같다고 말한다. 빼 버리면 아무렇지 않는데, 그냥 두면 건드릴 때마다 아파서 놀라게 되는 가시 말이다.
“저도 형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형님은 약한 사람이야요. 용기가 없는 거지요. 너무 양심이 강해요.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약하면 약한 만치 그만치 반대로 양심이란 가시는 여물고 굳어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오발탄’ 중에서)
남들은 가난을 참지 못한 채 양심 따위를 훌훌 털어버리고 법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서 잘들 살아가고 있는데 철호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난한 생활을 그저 운명처럼 수용한다. 소설은 양심적이고 선량한 주인공이 궁핍 때문에 결국 파탄 지경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해방촌 판자촌에서 고향을 그리다가 미쳐 버린 어머니,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족들을 위해 양공주가 되어 버린 누이, 학업을 중단하고 입대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딸과 만삭 아내. 이런 가족 상황에서 동생은 강도죄로 경찰에 잡혀가고 아내는 병원에서 출산하다 죽게 된다. 병원으로 달려갔던 주인공은 허탈감에 빠져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절규하며 신의 구원을 바란다.
“아들구실 남편구실 애비구실 형구실 오빠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이 소설 속 독백은 신의 손길이 절박한 시대에 신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오발탄이란 소설 제목은 주인공의 ‘조물주의 오발탄’이란 독백에서 차용한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가장의 독백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출구를 잃은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한 시대의 방향 상실은 어떤 세대에도 적용이 된다.
가자! 우리들의 본향으로
이범선은 55년 현대문학에 ‘암표’ ‘일요일’이 추천되어 등단한 후 10편의 장편과 70여편의 중단편을 남겼다. 58년 단편소설 ‘갈매기’로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된 그는 59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는 단편소설 ‘오발탄’을 발표함으로써 전후의 대표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으로 61년 ‘제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유현목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오발탄’은 그에게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당시 군사정권으로부터 소설이 한국사회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초를 당했다. 이 일로 고등학교 교단에서도 해직을 당했다.
후암동 마을버스 종점 로터리에서 ‘108 하늘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일제강점기에 신사로 오르는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키며 해방촌의 명물이 된 ‘108 하늘계단’은 두 길로 나뉘어 가운데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쇠잔해진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벽화도 해방촌의 볼거리 중 하나다. ‘108 하늘계단’ 주변에서부터 신천교회, 외국인학교 등을 거쳐 해방촌성당과 해방촌오거리로 오르는 골목과 도로변 곳곳에 보성여고생들과 서울대 건축학과 학생, 주민들이 함께 작업한 벽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 해방촌의 주민 10명중 1명이 외국인이다. 장기체류 외국인과 젊은이들 발길이 늘어가고 있다. 태생적으로 이주민에 의해 형성된 해방촌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주민들을 향해 그 품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분단과 전쟁, 탈향으로 인한 뿌리 뽑힘이 만든 ‘실향의 공간’ 해방촌이 주는 공간적 의미는 회복이다. ‘오발탄’에서 어머니가 “가자 가자”라고 소리친 그곳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인데 잠시 잊고 있는 본향이 아닐까.
[이범선처럼 생각하기]
힘없는 사람에 의한 인간다움의 회복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소설가 이범선은 전쟁이 인간성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잘 보여주는 전후작가이다. 그는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의 대지주였던 기독교 가정에서 유복하게 성장했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기 인식을 수행하기보다 삶의 안주를 선택했다. 그러나 전쟁이 그를 바꾸어 놓았다.
‘나의 피난기’(1959년)는 한국전쟁을 겪은 그가 1·4후퇴로 다시 가족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던 경험을 남긴 자전적 기록이다. 그는 서문에서 “나의 평생에 있어 너무나도 기막힌 일이었기에 나는 여기 이것을 기록해 자손들에게 영원히 남겨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는 6·25전쟁이라는 비극적 체험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생전 고백과 일맥상통한다.
1958년 전영택 주태익 이종환 석용원 황금찬 등과 함께 한국기독교문인클럽 창립에 주축이 되었던 그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작가적 양심을 작품을 통해 확연히 표출했다. 작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길 원하는 하나님 뜻과는 달리 ‘교리는 불신과 증오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문제들을 제기했다.
특히 장편소설 ‘피해자’에서 힘없는 사람에 의한 인간다움의 회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피해자’를 통해 신의 사랑과 모습이 왜곡된 교회에 대해 지적하고 그 와중에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가 종교를 부정하거나 신을 모독하고자 함은 아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이라고 부르는 그 성황당 저 너머에 계신다”고 주인공 요한의 입을 통해 명백히 한다.
이범선은 “기독교 본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근본정신과 어긋나게 받아들여진 한국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한 대담에서 재차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인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사랑을 바르게 강조하기보다는 교파의 명분을 유지하고 옹호하려는 목적에서 교인들에게 소극적인 금기만을 강조해 온 결과를 지적하고 싶어 했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ㅣ국민일보 2016.09.23
/ 2022.07.1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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