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는 얼음이 얼었단 소식도 들린다. 유리창에 손을 대면 뽀드득 소리가 나. 뽀드득 소리란 말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택시 합승을 한 아가씨와 할머니. 아가씨가 방귀가 급해 창문에 대고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사히 실례를 했어. 그런데 할머니가 아가씨를 급 째려봤대. “소리는 잘 처리했는가 몰르겄지만서두 이 냄새는 우짤거여.” 뽀드득 뽀드득…. 들킬 수밖에 없는 냄새.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골프장에 간 전모씨. 측근의 변명에 의하면,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자기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우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지존급. 냄새가 너무 나지만 민주주의 아버지시라는데 어쩌랴. 그이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다. 감퇴란 어떤 욕구나 능력, 힘이 줄어서 약해진다는 말. 나이 들어가는 증거다. 글 연재를 신문 외에는 거절하다보니 마감 ‘빵구’를 낼 일은 없지만, 이도 모른다. 기자 동무가 챙겨주어야 한다. 어제 저녁에 개를 풀어놓고, 풀어놓은 걸 깜박 잊고 들어와 버렸나봐. 목줄을 하지 않고 넓은 견사에 넣어 두는데, 하루에 한두 시간은 마당에서 맘대로 놀게 해준다. 그러나 남의 밭에 쳐들어가 장난질을 했다간 동네 원성을 사게 되니 완전한 자유는 줄 수 없다. 아침에 문 열어 보니 현관 앞 그네 위에 올라가 그네를 즐기면서 쿨쿨 단잠. 멀리 안 도망가고 나를 지켜주었구나. 까맣게 잊고 나도 잠을 잤었다.
지난주엔 술자리에서 동무랑 낼 점심밥을 먹자고 약속해놓고서 까먹기도 했다. 식당에서 문자가 왔다. 나는 다른 데 가 있었고. “미안, 쏘리” 백번하고 다음에 비싼 회를 대접하기로 했다. 빨리 해외로 도망을 쳐야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화에 따른 기억 상실은 조금 있긴 했지만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아니었다. 내가 포도주를 좋아해 알코올성 치매가 걱정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 주님의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은 또 제자됨의 예의가 아니렷다. 곤란한 인생살이로다.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9.11.13
/ 2022.07.1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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