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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땡의 식물 이야기] 거실에 이것만 놓아도,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집

푸레택 2022. 7. 9. 12:44

거실에 이것만 놓아도,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집 (daum.net)

 

거실에 이것만 놓아도,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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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땡의 식물 이야기] 반려식물로 키우기 좋은 알로카시아 / 김이진 기자

'알로카시아'라는 식물이 있다.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1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식물과 나무를 주제로 꾸민 식물 카페에서 알로카시아를 처음 봤을 때 아주 멋진 예술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야, 이렇게 근사한 식물이 있구나. 내 키를 훌쩍 넘는 압도적인 크기에 지금까지 보아오던 식물과는 첫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낯설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국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식물 비주얼 쇼크라고 해야 할까. 굵직한 목대에서 시원하게 줄기가 뻗어 나왔고, 초록 잎이 딱 두 장 펼쳐 있었다.

참 심플하구나. 그럼에도 둥글둥글 말아 올라가듯 생긴 독특한 갈색빛 목대와 쭉 뻗은 줄기, 큼지막한 초록 잎은 솜씨 좋은 조각가가 오랫동안 고심해서 빚은 것처럼 편안한 균형감을 주었고 조형적으로 더없이 멋졌다.

첫 만남 후 짝사랑하듯 알로카시아가 눈에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식물 기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저 멀리 사라졌다. 나의 똥손에서도 살아남을 것처럼 강인해 보이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무언가에 홀리듯 과감하게 알로카시아를 집으로 들였다.

어째서 매번 저지르고 난 뒤에 공부를 하게 되는 걸까. 물론 그 공부란 것도 문제가 생겼을 때 하게 되는 것이지만. 잘 알아보고 들이자고 다짐하지만 번번히 앞뒤가 바뀌곤 한다.

큰 사이즈가 탐이 났지만 좁은 우리집에 맞게 중형 사이즈를 들였다. 옹기 화분에 심은 알로카시아가 베란다에 떡하니 자리 잡으니 왠지 든든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줄 것 같은 듬직한 매력. 그리 크지는 않지만 시원한 기운은 여전했다.

알로카시아는 빛에 민감하다. 쨍쨍 내리쬐는 빛을 받으면 잎이 타버리고, 빛이 약하면 줄기가 힘 없이 흐물거리듯 추욱 처진다. 잎의 색이 연해지고 얇아진다. 직사광선이 아닌 밝은 빛을 찾아주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빛을 따라서 줄기가 휘어지는 성질을 굴광성이라고 하는데 알로카시아는 굴광성이 높은 식물이다. 햇빛을 좇아가면서 자라므로 화분 방향을 적당히 돌려줘야 균형 잡힌 모양을 유지한다. 물은 과습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해서 줘야 한다.

내가 들인 품종은 알로카시아 오도라였다.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목대다. 목대 부분이 원시적인 자연 느낌이라 멋지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목대라고 표현했는데 목질화된 기둥 줄기라고 설명하면 적당하려나.

잎이 떨어지면서 남은 흔적들이다. 알로카시아 잎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먼저 나온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 시든다. 시든 모습이 그다지 보기 싫지 않다면 바짝 마른 뒤에 잘라주는 게 좋다. 잎은 비록 누렇게 변했지만 줄기를 잘라 보면 아직 싱싱한 경우가 많다.

잎이 지면 새 잎이 부지런히 나온다. 관엽식물은 잎이 돋아날 때가 흥미진진하다. 웅크렸다가 펼쳐지는 모습이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제각각 다르다. 알로카시아는 새 잎이 날 때 뾰족한 모양으로 길게 자라다가 하루 아침에 몸을 일으켜 세운다. 펼쳐지는 순간에 이미 완성형의 모습을 갖췄다. 가끔 잎이 꼬이듯 몸을 꿈틀대는 것 같다면 손으로 살짝 펴주는 것도 괜찮다.

줄기와 조금 다른 모양으로 돋아나거나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길다면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다. 천남성과 식물의 꽃은 특징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 모양이 아니고, 작은 방망이 같은 꽃이 포에 둘러싸여 피어난다. 색감이 별로 없다.

대부분 방망이 윗부분이 수꽃이고, 아래쪽 부분이 암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는데 왜 자가 수정이 안 되는 걸까 궁금한 적이 있다. 개화 시기가 다르다고 한다. 암꽃이 먼저 피고, 수꽃이 늦게 피어서 수꽃이 성숙해진 뒤에는 암꽃이 이미 시들어 수정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식물의 생태다.

봄에 들인 알로카시아는 초겨울까지 베란다에서 무탈하게 잘 자랐다. 알로카시아는 열대 식물이기 때문에 겨울 추위에 약하다. 베란다에서 어느 정도 적응기가 끝났을 거라 판단했고, 겨울 냉해도 피하고 습도 조절을 할 겸 방으로 옮겼다. 알로카시아는 몸에 있는 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기질이 있어 가습 효과가 있다. 잎에 물방울이 또르르 맺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 알로카시아와 한방에서 지내는 건 즐거웠다. 자연이 주는 위로가 포근했다. 건조하지 않을까 싶어 물을 평소보다 자주 주면서 살폈다. 아무래도 빛이 모자라서 줄기가 약하고 잎이 맥아리 없었지만, 그럭저럭 잘 견뎌 주었다.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봄이 왔다. 베란다로 다시 옮겨주려고 알로카시아 몸통을 잡고, 화분을 끙끙거리며 들었다. 그런데 알로카시아 몸통이 푹 주저 않는다. 목대가 푸시시 꺾어져 버린 것이다. 두 동강이 났다. 목대에서는 물인지, 진물인지 새어나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 놀랐다.

'무름병'이었다. 말 그대로 물이 많아 물러지는 증상이다. 식물은 물을 자주 주면 탈이 난다. 넘치는 물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거리다가 죽어간 것이다. 미안했다. 뒤늦게 무름병에 대해 찾아보니 뿌리를 다시 심으면 개체가 돋아난다고 한다. 그때는 그런 정보를 몰랐다. 남아 있는 애정을 거둬들이지 못해서 알로카시아를 다시 들였고, 정다운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예전에는 알로카시아가 정말 핫한 식물이었다.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인테리어 좀 했다는 카페나 호텔에 가면 어김없이 알로카시아를 만나곤 했다. 인테리어 잡지나 매체에서 공간 연출 팁으로 소개한 것도 한몫했다. 노출 시멘트 화기에 커다란 알로카시아를 식재해 포인트를 주는 것에 아주 재미가 들었다. 특별한 비법이 필요하지 않고 심어 놓기만 해도 저절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지금은 그 인기가 사그러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야 여전히 좋아하지만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식물 트렌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상당히 민감한 편이어서 늘 기본으로 나오는 식물은 여전하지만 몇 해 지나면 농장에 출하되는 식물이 싸악 바뀔 정도로 변화한다. 뭐든지 오랜 시간 노출이 되고 눈에 익으면 희소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알로카시아는 언젠가 또 유행이 오지 않을까.


도시에서 키운 미적 감각이 초라해지는 순간

알로카시아에 관한 '웃픈' 사연이 하나 있다. 나는 봄이 되면 엄마한테 예쁜 꽃 모종을 선물하곤 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어릴 적에 화초를 가꾸던 엄마 모습이 그리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생활에 찌든 엄마가 화분을 키우면서 꽃이 피어나는 걸 예뻐하고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엄마는 내가 건네는 꽃화분들을 보고 "아이고야, 고맙다" 웃었지만 왠지 그리 열심히 가꾸는 기색이 아니었다. 번짓수가 잘못됐나 싶어 고운 빛깔의 서양란을 선물하니 정말 좋아했다.

우리는 시골 할머니들이 키우는 꽃과 식물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진분홍색의 영산홍이며 집집마다 거의 키우다시피하는 군자란, 불긋불긋한 꽃을 피우는 선인장(특히 게발선인장), 선명한 색감의 서양란, 텔레비전 옆에 꼭 하나씩 짱박혀 있는 산세베리아 등. 내가 엄마한테 꽃화분을 선물한 것도 그런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호기롭게 알로카시아를 선물했다. 이정도 희소성 있는 매력이면 엄마가 좋아하려니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알로카시아를 보고 한마디 했단다.

"오메나~! 집안에다 왜 토란을 키운대."

도시에서 키운 미적 감각이란 게 이토록 초라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늘 가까이 하는 시골 감각에 맥도 못춘 사건이었다. 그 한 마디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해마다 피어나는 사과꽃이며 살구꽃, 배꽃, 도라지꽃, 채소꽃, 지천에 널린 들꽃을 보고 지내는 시골 사람들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익숙한 것이고, 도시 사람들이 흔히 촌스럽다고 하는 꽃화분들이 특별한 것이었다.

알로카시아는 토란이랑 오십보 백보였다. 나는 급겸손해졌다. 그 뒤로 더는 엄마한테 함부로 화분을 선물하지 않았다.

김이진 기자ㅣ오마이뉴스 2019.06.24


/ 2022.07.0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