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좋았다, 전무후무한 차떼기 식물 (daum.net)
[만고땡의 식물 이야기] 흔하지만 위대한 식물, 산세베리아 / 김이진 기자
식물을 키우다보니 주변 친구가 물어보곤 한다.
"잘 안 죽는 식물은 없어?"
"응! 이 세상엔 없어."
죽지 않는 식물은 죽음이 없는 다른 세상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체인데 어떻게 죽지 않을 수 있겠나. 게다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자라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실내 공간이나 정원에서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곧 내 환경에서 내 식대로 길들이겠다는 선포인 셈인데, 당연히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고.
그런데 저런 '큰소리'가 먹히지 않는, 잘 안 죽는 식물이 있긴 있다. 바로 산세베리아다. 가죽처럼 빳빳하게 뻗은 기다란 잎에 녹색 띠나 크림색 띠 무늬가 얼룩얼룩한 이 식물은 전체적인 식물 형태는 비슷하고 품종에 따라 색깔이나 무늬가 조금씩 다르다.
거칠어 보이는 모양 때문에 '장모님의 혀', '활 시위풀' '뱀의 혀' 같은 특이한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가끔 보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혈기왕성해 보이는 잎이 있는데 그걸 보고 지은 걸까. 실제로 산세베리아의 잎에서 추출한 섬유로 로프나 활 시위를 만든다고 하니 질김의 강도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너무 흔해서 몰랐던 산세베리아의 매력
산세베리아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알거나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흔해빠진 식물이 되어 별다른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등장한 지 15년이 훌쩍 넘지 않았을까. 나부터도 그랬다. 오랜 시간 동안 산세베리아를 봐 와서 굳이 집에까지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특이하게 생기긴 했지만 심미적으로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작용했다.
그러다 산세베리아 개체수가 늘어난 지인한테 또 어찌어찌 분양을 받게 되었다. 산세베리아는 번식력이 좋은 편이어서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화분 크기가 늘어나거나 화분 갯수가 늘어나는 걸 감안해야 한다. 좀 주저하긴 했지만 키가 삐죽한 모양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난 왠지 그 모양은 촌스러웠다. 내가 분양 받은 것은 키가 작고 잎이 도르르 말리듯 자라는 '산세베리아 로렌티 콤펙타'라는 품종이었다. 산세베리아는 작은 화분에 이미 꽉 차 있는 상태였고, 살짝 맥아리 없이 처진 잎이 몇 보였지만 그럭저럭 튼튼해보였다. 적응 기간 동안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자리를 마련해줬다.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화분이 비좁아 보여 조금 넓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줘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고, 웬만해선 잘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마음이 느긋했다. 한동안 방치하듯 꿈지럭거리다가 널찍한 옹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자리를 잡아주면서 보니 뱅그르르 돌아가면서 잎이 자라는 모양이 꽤 귀엽다. 빳빳한 잎이 단단해서 듬직하기도 했다. 아니 웬 걸, 어느새 줄기 옆에 새 촉이 돋아나 붙어 있는 것도 보인다. 신기하다. 산세베리아는 뿌리 촉 번식이라 뿌리에서 저절로 새끼들이 자란다.
그 뒤로는 새끼들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바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새로 하나 올라 왔으려나 하고 한번씩 널찍한 잎 아래를 들춰보면 뾰족한 싹이 웅크리듯 돋아나고 있다. 그 생명력이 참 대견하고 반갑다. 1년 쯤 지나자 널찍한 옹기 화분이 가득 찼다. 작고 앙증맞아서 키우고 싶다는 엄마한테 산세베리아를 반 이상 뚝 떼어줬다.
분리하는 것도 간단하다. 개체가 조금 튼튼해졌다 싶으면 손으로 뿌리를 살살 떼어주면 그만이다. 성격이 어찌나 무던한지 어지간한 자극이나 변화에는 별 내색이 없다. 신문지로 둘둘 말아 준 산세베리아는 고향집에 가서도 대가족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 듬성듬성하던 우리집 산세베리아 화분도 다시 채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산세베리아 생장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흔히 알려진 관리 요령은 반그늘에서 키우고, 물은 되도록 건조하게 주고, 겨울 냉해를 조심할 것. 이 정도다. 직접 키워보니 정말 이렇게 화끈한 조건은 드물다.
건조하게 키우고 추위만 막아주면 만사 오케이! 물 대충 주고, 얼어죽이지만 말라는 거다. 대부분의 식물은 맞춰야 할 기본적인 습성은 되도록 꼭 지켜야 하고, 키우는 환경에 따라 깨알같이 갈라지는 소소한 주의사항들 때문에 애를 먹는데 산세베리아는 그런 특수 상황이 별로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산세베리아는 아프리카 서부 내륙 지역인 열대 사바나 기후가 원산지다. 건기 때는 건조를 잘 견디고, 우기 때는 물빠짐이 잘 되는 토양 탓에 물이 많아도 잘 견딘다. 우리가 접하는 산세베리아 관리 요령은 물과 빛을 지나치게 제한한다. 관리가 쉽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반년 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살아남는다고 홍보를 해서 그런 모양이다.
봄이나 여름철에는 물을 충분히 주고 햇빛을 많이 받게 하는 것이 성장에 좋다. 잎이 튼튼해지고 뿌리 번식도 활발하고 아주 무럭무럭 튼튼하게 잘 자란다. 대신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과 겨울에는 물을 적게 줘야 한다. 물을 줄 때는 잎줄기 중심을 피해 주변부터 살살 스며들 듯 주는 것이 요령이다.
공기 정화 능력은 과장됐지만... 침실에 두면 좋아요
산세베리아는 공기 정화 식물로 유명하다. 사실 그 이유로 단박에 톱스타급 식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하다는 식상함을 극복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슬로건과 타이밍이 좋았다.
삶의 질을 올려보자며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였고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전자파나 유해 물질, 미세먼지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심하던 시기였다. 식물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산세베리아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였다. 트럭 한 차에 크고 작은 산세베리아만 싣고 다니면서 "공기 정화 식물~ 산세베리아 왔어요~" 방송까지 하면서 파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차떼기 식물이다.
그러나 김 빠지는 얘기를 좀 하자면 산세베리아의 공기 정화 능력은 사실 톱으로 내세울 만큼 뛰어나지는 않다. 미국 나사에서 발표한 공기 정화 식물 순위를 보면 1위가 아레카 야자, 관음죽, 대나무 야자, 인도 고무나무, 드라세나 데레멘시스, 헤데라 등등으로 이어지고 산세베리아 순위는 27위다.
우리나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도 실험이 종종 발표되는데 산세베리아 결과는 비슷하다. 최근에 발표한 미세먼지 제거 효과가 좋은 식물을 보면 파키라와 백량금, 멕시코소철, 박쥐란, 골드크리스트 윌마 등이고 전자파 차단에 좋은 식물은 칼란코에나 팔손이 나무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니 기능성을 최대한 부각하려고 마치 산세베리아가 슈퍼울트라 식물이라도 되는 양 전자파 차단에까지 효과가 있다고 떠드는 기사를 보면 겸연쩍다. 정확하게 증명된 바가 없다. 하지만 산세베리아는 반려식물로 충분히 매력적이니 그걸로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 옆에 작은 식물 하나 놔둔다고 전자파가 차단되거나 공기가 깨끗해지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식물을 통해서 공기 중 오염 물질을 제거하려면 공간 대비 차지하는 식물의 비율이 중요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간의 10퍼센트 정도는 식물이 자라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산세베리아는 특이하게 밤에 광합성 작용을 하기 때문에 침실에 놓아두는 것은 좋다. 밤이 되면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기 때문이다. 산세베리아의 정화 기능을 누리고 싶다면 그런 배치도 가능하다. 굳이 베란다가 아니어도 실내 공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침실에 놓아두는 것도 무방하다.
산세베리아는 선택받았다. 아주 강한 생명력과 특이한 생김새, 여기에 공기 정화라는 기능성이 조화를 이뤄 아주 잘 만들어진 상품이 된 것이다. 식물업계에서 히트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냈다. 사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대중 감성을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무실이나 집에 하나씩 키우는 식물, 키우진 않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식물. 할머니들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는 식물. 내가 아는 한 할머니는 산세베리아를 '산세베리'라고 부르면서 '산세베리야~'라고 마치 아기 대하듯 부르곤 한다. 최근에는 산세베리아의 뒤를 이어 산세베리아 스투키라는 품종이 그 영광을 이어 받고 있으니,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김이진 기자ㅣ오마이뉴스 2019.09.27
/ 2022.07.0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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