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임의진의 시골편지] 검은 하늘 흰 개

푸레택 2022. 6. 30. 11:10

[임의진의 시골편지]검은 하늘 흰 개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검은 하늘 흰 개

[경향신문] 동네 초입에 들어오면 흰둥이 잡종견들이 반긴다. 반긴다는 건 제가 잘 아는 인간들에게 한해서이고, 초면이면 깡패나 다름없이 우악스럽게 덤벼든다. 놈들 앞에서 어떤 자랑을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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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초입에 들어오면 흰둥이 잡종견들이 반긴다. 반긴다는 건 제가 잘 아는 인간들에게 한해서이고, 초면이면 깡패나 다름없이 우악스럽게 덤벼든다. 놈들 앞에서 어떤 자랑을 쳐도 소용없는 것이 “느그들 똥 먹을 줄 알아?” 이 녀석들은 자기가 눈 똥도 집어먹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기겁하게 만들려는 그야말로 개수작이렷다. 거기다가 묶인 개들을 찾아다니며 줄줄이 붕어빵 씨를 뿌려댄다. 개 주인에게 몇 번 당부도 하고 그랬지만, 그이가 술만 자셨다 하면 “내가 수꾸락을 놔분 것도 아닌디 내 개도 내 맴대로 못하고 살라믄 뒤져야 쓰재. 개도 햇비테 돌아댕개야 좋재 가막소(감옥)에 살어서 쓰꺼시여. 저라고 꼬랑지를 살랑살랑 이삐게 흔들고 댕김시롱 인사성도 밝은디 씨잘데기 없이 말들이 많어부러.”

그이가 술을 마시는 날만큼 개들은 수시로 풀려나서 산이고 들이고 홈그라운드가 된다. 그래도 싫어하는 눈치는 알아가지고 나를 보면 슬금 피한다. 우리 개를 어떻게 해버리려는 수작만 아니라면 나도 흰둥이들을 두고 볼 아량도 있다. 그러나 녀석들은 거만한 나라 오만이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단에서 온 것처럼, 싸움 잘하는 나라 칠레의 행동대장 개들처럼 금방 한 대 ‘칠’ 것처럼 심기를 건들어 댄다.

나는 오랜 날 검은 개들과 함께했다. 죽은 차우차우도 까망이었고, 몇 해 동거 중인 시바견도 블랙탄 네눈박이. ‘블랙도그 신드롬’이라 하여 검은 개는 입양도 잘 안 되고, 유기견도 많다고 한다. 사람은 흑인 인종차별, 개에겐 흑견 견종차별.

무지막지하게 덥더니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예보. 검은 하늘, 먹구름이 남쪽하늘에서부터 밀려오기 시작이다. 장마가 끝나면 시집을 보내줄 생각인데, 그사이 흰둥이들에게 당하지만 않으면 된다. 검은 하늘, 흰 개의 천하제패 세상을 어찌 이겨낼꼬. 세상모르고 마당을 뛰노는 우리 네눈박이 검정개를 보면서 걱정으로 애가 타는 세월이다. 딸 가진 부모 심정인가.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06.11

/ 2022.06.3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