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3) 다산(多産)의 상징, 석류가 익어가는 계절
오늘은 산책 겸 꽃 사진을 찍기 위해 서울식물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울식물원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서울식물원은 강서구 마곡지구에 위치해 있으며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하여 만든 이른바 도시형 ‘보타닉 공원’(Botanic Park)이다. 특히 공원의 열린숲에는 2020~2022년 식재설계공모 우수작품 정원이 있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갖가지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초여름은 수국의 계절이다. 산수국, 나무수국, 미국수국, 떡갈잎수국이 꽃을 피워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며 피는 꽃, 하늘바라기가 샛노란 꽃을 예쁘게 피워냈다. 높은 산에서 드물게 자라는 냉초도 우리 곁을 찾아와 자줏빛 꽃을 피워냈고, 북미 고향을 떠나와 우리 땅에 정착한 나비바늘꽃(Whirling Butterflies)도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나를 반겨준다. 흔히 가우라(Gaura)라고 부르는 나비바늘꽃의 꽃말은 ‘섹시한 여인’ 또는 ‘떠나간 이를 그리워함’이다.
오늘 주제원의 하이라이트 꽃은 미국수국 아나벨이다. 커다란 눈뭉치 같은 탐스러운 무성화가 나뭇가지에 가득 매달려 있다. 꽃이 귀한 여름에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요즈음 BTS급 최고 인기 정원수라고 한다. 미국 일리노이드주 Anna라는 지역에서 발견되어 미인이라는 뜻의 belle라는 단어를 붙여 Annabelle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온실 열대관의 백미(白眉)는 에틀린케라 엘라티오르다. 이 식물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자바섬이 원산지이며, 꽃이 화려해 ‘정열의 불꽃’이라 부른다. 온실을 환하게 밝혀주는 횟불처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횟불생강, 토치생강, 튤립생강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이 꽃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근심걱정이 저절로 사라지고 마음이 즐거워진다. 그래서 이 꽃을 ‘마음을 치유하는 꽃’이라고 한다.
어찌 에틀린케라 엘라티오르만 마음을 치유하는 꽃이랴. 마음을 치유하지 않는 꽃이 어디 있을까. 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진다. 꽃에 취해 꽃 사진을 찍을 땐 세상 번뇌도 저만큼 물러간다. 마음이 울적한 날엔 숲길을 산책하며 산새소리 계곡물소리를 듣고 나무와 풀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을 얻는다. 요즈음 우울증을 극복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반려식물은 반려동물을 키울 때 느끼는 정서적 교감(交感)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지중해관에 붉은 석류 하나가 익어가고 있다. 박상진 교수의 석류나무에 관한 글을 옮겨 본다. 석류나무는 이란 지방이 원산지이며,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석류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뭇 남성 속의 한 여인을 말할 때 쓰는 ‘홍일점’(紅一點)의 어원이다. 석류나무 열매가 익어 가는 과정은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차츰 커져가는 음낭의 크기와 그 모양이 닮아 있다. 열매의 이런 특징 때문에 석류 열매는 다산(多産)의 의미와 함께 음양(陰陽)의 상징이다. 옛날 귀부인들이 차고 다니던 향낭(香囊)은 음낭을 상징하는 석류나무 열매 모양으로 만들었다. 기독교에서는 석류나무가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포도와 함께 석류나무는 성서에도 여러 번 등장하며 솔로몬 왕은 석류나무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우리나무의 세계》 중에서
석류나무의 열매인 석류는 예로부터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였다.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는 매일 석류 열매를 반쪽씩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석류는 여성 과일의 대명사다. 석류에는 여성호르몬과 흡사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콜라겐 합성을 촉진해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노화를 지연시켜 준다. 또한 석류에 함유된 안토시아닌과 탄닌은 항산화 성분이 있어 염증을 없애주고 암을 예방하며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연구에 따르면 석류 씨앗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은 뇌의 기억과 인지적 장애에 도움을 주며,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키는 작용이 있어 예로부터 발기부전의 자연치료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석류 씨앗에 음식 알레르기 증상이 있거나 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석류 섭취를 조심해야 한다. - 《지식백과》 중에서
잠시 주춤했던 장맛비가 내일부터 며칠동안 계속 내린다고 한다. 노원구 쪽에 살 때는 장맛비가 그치면 수락산, 불암산에 올라 계곡물 넘쳐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곤 했었는데 그 즐거움을 잊은지 오래다. 녹음(綠陰)이 짙어가는 계절, 어제는 집에서 가까운 개화산을 찾았으니 이번 주말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인천을 대표하는 산인 계양산을 찾아나서야겠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언제나 전쟁의 두려움과 고달픈 삶의 우울감으로 가득하다. 속사랑 다 못준 어머니 같은 산은 언제나 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