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임의진의 시골편지] 트로트 열풍

푸레택 2022. 6. 18. 06:58

[임의진의 시골편지] 트로트 열풍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 트로트 열풍

[경향신문] 꽃게처럼 발개져 가는 단풍 잎사귀가 가을가을 하는 날씨. 주운 밤을 쪄서 까먹고 있으려니 낮달도 입이 궁금한지 슬그머니 고갯짓. 추석이 지난 뒤로는 그늘이 드리운 곳마다 찬기

news.v.daum.net

꽃게처럼 발개져 가는 단풍 잎사귀가 가을가을 하는 날씨. 주운 밤을 쪄서 까먹고 있으려니 낮달도 입이 궁금한지 슬그머니 고갯짓. 추석이 지난 뒤로는 그늘이 드리운 곳마다 찬기가 느껴진다.

네눈박이 암컷 시바견 모노가 외로워해서, 모노가 아닌 스테레오를 만들어주라면서, 애견인 지인이 족보가 있는 수컷 시바견 아이를 내게 안겨준 것은 여름 우기 때. 홍시감이 누렇게 익어가듯 누렁이 아이도 이젠 제법 사나이 자태가 난다. 이름은 ‘똑바로’. 내가 바르게 살지 않으니 개라도 바르게 살라고 해서리.

유디티 훈련 같은 건 절대로 안 시킨다. ‘대가리 박아’는커녕 ‘앉아, 누워, 손’ 뭐 이딴 것도 안 가르치는데, 큰개 모노를 따라서 가끔 흉내. 귀가 먼 아랫골목 아재가 낮에 틀어놓는 전축 소리가 요샌 그냥 일상이라서 트로트를 들으며 아이들이 일약 ‘가왕’으로 성장 중. ‘우우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의 재개발, 전화 속엔 연신내 몸은 강남 하고도 수북면 삼인산 클럽에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찐찐찐찐~ 심장을 훔쳐간 사람 찐이야~, 외로워 마라 당신곁에 붙어 있쓸게 붙어라 딱 붙어라’.

암수강아지 둘이 핥고 깨물고 아주 찐찐찐 딱 붙어서 꼴사나운 풍경. 택배 아저씨가 물건을 놓고 가심시롱 “벌써 개판입니다잉. 근디 거시기가 겁나 짤룹네요잉. 사내구실을 할까 몰르겄어용.”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아앙 트로트로 개들이 짖는다. 나훈아의 ‘테스형’이 아니고 ‘택배형’, “거기 택배형~ 참견 말고 그냥 가셩. 뭐가 짤루워잉. 기다려봐잉. 쭉쭉 길어질텡게. 이 가을 무르익어 볼텡게” 똑바로가 사막여우처럼 귀를 종긋 세우며 택배형에게 한소리.

개도 트로트로다 짖어대고, 동네 이장의 아침방송도 트로트로 개시. 시골교회는 권사님들이 찬송가를 트로트 뽕짝으로 편곡. 산너머 용흥사 스님들도 트로트풍 불경을 좌르르르. 나라가 통째 트로트 열풍이야.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10.15

/ 2022.06.1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