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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김장 찬송

푸레택 2022. 6. 18. 06:46

[임의진의 시골편지] 김장 찬송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 김장 찬송

[경향신문] 포도주를 건배할 때나 ‘주여 삼창’을 있는 힘껏 하지만 교회에서 해본 적은 없다. 목사가 등장할 때 보통 손을 들어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할렐루야 축구단’도 해단한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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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건배할 때나 ‘주여 삼창’을 있는 힘껏 하지만 교회에서 해본 적은 없다. 목사가 등장할 때 보통 손을 들어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할렐루야 축구단’도 해단한 마당에 아무 때나 할렐루야를 외칠 일도 아님이렷다. 어려운 성경을 풀어 설교를 할라치면 노동으로 피곤한 신자들 졸릴까봐 재미난 옛이야기도 한 토막씩 곁들였다. 설교를 짧게 하면 헌금 아깝다고 더하라는 분도 계셨다. 그래도 설교와 기도는 짧게 해야 박수받는다.

언젠가 고모가 원장인 기도원에 한번 가봤다. 고모는 피아노로 찬송가를 연주하다 갑자기 방언 기도를 시작했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로 박수를 치더니 냅다 기세를 몰아 건반을 쾅쾅쾅 두들기는 통에 시끄러워 도망쳤다. 이쪽 업계 말로 ‘영이 달라’ 나는 더 이상 기도원 같은 곳엔 얼씬도 안 한다. 조용한 교회에서 자랐고, 남들 보기 시끄러웠겠지만 나로선 오지에서 조용히 목사질(?)을 했다.

교회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김장날. 굴과 젓갈이 담뿍 든 호남식 배추김치 담그던 날의 풍경이다. 신자들은 교회 김장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볶은 참깨가 남아 돌 정도. 수육을 삶고 권사 집사님들과 둘러앉아 김추자 권사님(?) 메들리를 부르면서 점심도 같이 나눴는데, 성찬식 포도주를 다 먹어버렸대서 잠시 미움을 사기도 했다. 찬송가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김장독에 김장김치를 집어넣을 때 장례노래를 부르니 또 죽는다고들 깔깔. 오! 천국의 기억.

참, 천국 말고 극락의 기억도 있다. 절집 공양주 보살님이랑도 친했다. 절집 김장도 해마다 얻어먹었지. 절집 김장은 다소 싱거웠으나 시원 담백. 김치냉장고에는 교회 김장 곁에 절집 김장이 나란히 있기도 했다. 천국 아니면 극락. 김장 김치와 된장국에 밥을 먹으면 김치 맛을 못 보셨을 예수와 부처가 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빵과 카레로 어찌 해장이 되겠는가.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0.11.26

/ 2022.06.1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