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보고 싶은 친구에게/신해욱 (daum.net)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말이 되는 소린가. 죽은 친구에게 답장을 써 달라니! 빙의란 말은 들어 봤다지만, 죽음에게 몸을 빌려준다니! 그러나 그 친구의 필체로 쓴 편지는, 그대로 그 친구가 보낸 답장이지 않을까? 죽은 친구가 그의 손으로 밥을 먹고, 그는 죽은 친구의 생각으로 말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그리움은 내 몸속에 나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어붙은 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를 갈라놓은 세상이 춥기 때문이지만, 너와 함께 나는 나의 전부를 쓰러뜨릴 준비가 돼 있다.
신용목 시인ㅣ서울신문 2016.10.15
/ 2022.06.1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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