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달항아리(201407-7)/강민수 · 백자의 숲/이상협 (daum.net)
백자의 숲 / 이상협
불탄 목적지는 이해하기 쉽고 나는
도착하는 길이 계절마다 다릅니다
구운 흙은 울기 좋습니다
깨어질 듯 그러했습니다
밖에 누가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균열을 찾는 중입니다
금 간 서쪽 무늬를 엽니다
나는 획의 기울기를 읽는 데 온밤을 씁니다
중심은 맺혔다 사라집니다
나는 안팎이 없습니다
검은 모자 떼가 날아갑니다
불쏘시개로 흰 뼈를 깨뜨리고
경계에서 나는 태어납니다
몇 백도의 불을 견뎌야 차진 진흙 덩어리는 달항아리로 거듭난다. 백자는 구운 흙, 구운 몸이다. 불탄 목적지란 백자를 말하는 것일까? 백자를 불탄 목적지라고 말하는 거라면 이는 비범하다. 불의 고통을 겪었으니 백자는 울기 좋은 몸이다. 백자에 귀 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밖에 누구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안과 밖에 아무도 없는데 그런 소리가 들린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가면 안팎이 따로 없다. 중심도 있다가 사라진다. 오늘도 나는 한자리에 머무는 데 실패한다. 다만 작은 균열이 생겨나는 백자에는 흘러간 어제와 다가오는 내일이 와서 잠시 머물다 떠날 뿐이다.
장석주 시인ㅣ서울신문 2018.06.09
/ 2022.06.1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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