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 개미초와 멍멍이풀
1.
평범한 일상, 나의 첫 일과는 아침 아홉시 둘째 손주 재호를 유치원 스쿨버스에 태워 등원시키는 일이다. 등원 차량을 기다리면서 나는 일곱 살 재호에게 생태 감수성을 자연스레 길러주기 위해 나무와 풀꽃을 살펴보게 하고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재호야, 나무에 새잎이 돋아나니 되게 싱싱해 보인다. 이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잎이 늘 푸른 나무야. 잎이 사철 푸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사철나무라고 불러. 여기 봐 봐! 꽃도 피었어. 꽃이 녹색이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햇빛, 공기, 물 맞았어. 근데 그거 어디서 배웠어? 유치원?”
재호는 갓털이 달린 민들레꽃 씨앗을 보면 후후 불어 날려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재호는 갓털 달린 민들레꽃이 어디 없나 두리번거린다. “재호야, 이 나무 좀 봐! 나뭇가지에 날개가 붙어있는 것 같지? 재호야, 화살이 뭐지? 쏘는 거. 그래, 화살을 쏜다고 하지. 화살 같이 빠르다는 말 들어 봤어? 그럼 이 나무 이름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작년 봄,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형형색색 예쁘게 피어난 알뿌리식물(구근식물)들의 꽃 이름을 재호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 꽃은 튤립, 이 꽃은 수선화, 이 꽃은 알리움, 이 꽃은 히아신스야.” 다음날 꽃 이름을 물어보니 그대로 대답을 해 깜짝 놀랐다. 다섯살 때, 재호가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저 나무는 대왕참나무야”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나무와 풀꽃의 이름을 알아간다는 것은 자연과 소통하는 관심 표현이다. 내가 나무와 풀꽃을 관찰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는 비로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큰 손주 아윤이가 네 살 때였던가. “아윤아! 여기 이 풀 귀엽게 생겼지? 이 풀 이름이 뭘까? 만져 봐. 보들보들하지? 꼭 강아지 꼬리처럼 생겼네. 이 풀 이름은 강아지풀이야” 하고 얘기해 주었다. 며칠 후 “아윤아! 할아버지가 이 풀 이름이 뭐라고 말해 주었지?” 하고 물어보니 아윤이가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음~ 멍멍이풀!” 그 후로 아윤이는 강아지풀만 보면 멍멍이풀이라고 불렀다.
작년에 재호에게 공터에 무더기로 피어난 하얀 꽃을 보며, “이 꽃 달걀 후라이처럼 생겼지? 이 꽃 이름은 개망초꽃이야” 하고 꽃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며칠 후 “이 꽃 이름이 뭐지?” 하고 물어보니 재호는 “개미초!” 라고 말한다. 개망초 주변에 개미들이 많이 보였다. 그후로 아무리 개망초꽃이라고 말해 주어도 재호는 웃으면서 “개미초, 개미초!”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개망초보다 개미초란 이름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나무와 풀꽃 이름을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와 풀꽃을 보고 무언가를 연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생태 감수성은 길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산과 숲, 바다와 강 어느 곳에서든 마음껏 뛰놀며 동물과 식물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는 체험의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직접 체험하면서 길러진 생태 감수성은 두고두고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하나뿐인 우리 지구를 살리는 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2.
동네한바퀴를 돌다 보면 카페 앞에도 교회 마당에도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그 꽃들은 저절로 자라난 꽃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름답고 예쁜 꽃들 속엔 누군가의 정성어린 손길과 숨결이 숨어있다. 동네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할머니가 긴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놓은 채송화와 로벨리아가 며칠 전 꽃을 활짝 피웠다. 오가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에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
다세대주택 동네 위쪽에 또 하나의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건물 공사를 끝내고 주택 주변에 나무를 심을 때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남천을 거름흙이 아니고 모래흙에다 심는다. 과연 나무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쌍한 나무들. 다 죽은 줄 알았던 남천이 봄이 되니 아래쪽 줄기에서 새잎이 돋아난다. 저 강한 생명력! 오늘 지나가다 보니 누군가가 모래흙 위에 거름을 살짝 뿌려놓았다.
3.
지난해 봄,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백목련 꽃이 구름처럼 피어났었다. 가을엔 감나무에 붉은 감이 열렸다. 공동현관 출입문 옆에 자리잡은 모과나무는 멋진 수피와 예쁜 꽃, 향기 내뿜는 열매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런데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막 새싹이 피어나려는 봄철, 느닷없이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한다. 백목련 꽃눈이 뭉텅이로 싹둑 잘려나갔다.
과도한 나무 가지치기로 앙상한 몸통만 남은 채 전봇대처럼 서 있는 나무들이 흉물스럽고 안쓰러워 보였다. 일조권 침해 때문이 아니라 낙엽 치우는 일이 귀찮아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멋진 수형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올렸던 백목련은 꽃눈이 모두 잘려나가는 아픔 속에 더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올해는 ‘침묵의 봄’을 맞이했다. 잔인한 봄이었다.
오늘 재호를 유치원 스쿨버스에 태워보내고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유심히 나무들의 생태를 살펴보았다. 참느릅나무는 과도한 가지치기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새로 돋아난 잎들이 원래 제 모습이 아니다. 작지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잎은 사라지고 활력없는 커다란 잎이 돋아나 있다. 모과나무도 백목련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새잎은 돋아났지만 수형(樹形)이 아름답지 않고 왠지 가분수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지나친 간섭은 자연에게는 독(毒)이다.
/ 글=김영택 2022.06.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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