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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경제 살리는 반도체, '골프 황제' 목숨도 구했다

푸레택 2022. 6. 13. 18:51

[김정호의 AI시대 전략] 경제 살리는 반도체, '골프 황제' 목숨도 구했다 (daum.net)

 

[김정호의 AI시대 전략] 경제 살리는 반도체, '골프 황제' 목숨도 구했다

1980년대 초 대학 신입생 시절에 추천 교양 도서 중 하나가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 쓴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재산은 일체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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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백도 반도체 센서로 작동.. 미래차 존망, 반도체에 달려
인공지능도 비트코인도 모래서 뽑아낸 '마법의 돌'이 좌우
반도체 경쟁 더욱 치열해질 듯.. 주도권 쥐어야 세상 지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프루동과 아이들'(1865),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소장. 파리에 머물던 프루동은 1848년 2월 혁명 후에 파리시 보궐선거에서 제헌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유명해졌다. 1840년부터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귀스타브 쿠르베는 프루동의 영향을 받아 초기의 낭만적인 화풍을 떠나 사실적인 회화로 나아간다. 쿠르베는 프루동이 사망한 해에 두 차례 그를 그렸다. /위키피디아

1980년대 초 대학 신입생 시절에 추천 교양 도서 중 하나가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 쓴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재산은 일체 악의 근원이며, 따라서 재산의 사회적 평등 없이는 정치적 평등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극단적인 공상적 사회주의자이면서 무정부주의자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을 처음 발명했다는 익명의 암호학자·컴퓨터공학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프루동과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카모토가 만든 비트코인은 금융 데이터를 탈중앙화해, 화폐 발행과 금융 권력의 소유를 분산하고자 한다.

소유·권력 방식 바꾸는 디지털 혁명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다른 점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우선 두 사람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서 ‘디지털 혁명’ 시대로 바뀌었다. 혁명의 동력 역시 ‘자유, 평등, 박애’에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변화했다. 둘째 차이는 수학의 힘에 대한 인식 차이이다. 프루동은 책에서 간단한 수학 대수식을 이용해 ‘소유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2진수 수학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디지털 화폐가 소유와 권력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셋째로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비트(Bit)’로 표현되는 디지털 데이터도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변화와 진보는 소유의 대상과 권력의 형태도 바꾼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특히 디지털 혁명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 반도체

반도체는 주로 화학 주기율표에서 IV족 물질인 실리콘(Si)으로 만든다. 실리콘은 바닷가 백사장에 널린 모래에서 얻는다. 여기에 III족과 IV족의 불순물인 붕소(B)와 인(P)을 주입하면, 그 불순물의 종류와 밀도에 따라 전기를 흐르게 하기도 하고 전기를 끊기도 한다. 이중적인 성격의 반도체가 된다. 여기에 더해서 전압을 가하면 전류를 연결하기도 하고 끊기도 하는 고속 디지털 스위치가 된다. 여기서 고속이라 하면 1조분의 1초 단위를 말한다. 빛도 멈춘 시간이다. 그 스위치 크기가 이제 원자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 ‘스위치’를 ‘트랜지스터’라고 부르는데, 반도체 칩 하나에 조 단위 개수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트랜지스터들을 전기적으로 얽히도록 연결하면 디지털 신호도 만들고, 전달하고, 수학 계산도 하고, 데이터도 저장한다. 이런 과정을 디지털 시계(clock)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인공지능 학습과 판단도 이 과정을 통해 진행한다. ‘알파고’에 사용된 컴퓨터도 반도체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비트코인 채굴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이렇게 철저하게 과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탄생했고 진보하고 있다. 모래에서 출발한 반도체가 인간의 과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마법의 돌’이 되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시대별로 PC의 등장, 인터넷의 보급, 스마트폰의 확대, 유튜브의 활용,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 비트코인의 확산을 이끌어 왔다<<b>그래픽>. 그리고 이제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도 열고 있다. 미래에는 백신의 개발과 치료도 반도체가 가능하게 할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에도 집단 병렬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세서(GPU)와 디램(DRAM) 반도체가 핵심이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인공지능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반도체의 기술과 생산력의 확보가 관건이 된다. 반도체는 이제 국가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의 힘이 된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들어서며 인간이 모래에서 창조한 반도체 기술과 생산력의 확보 여부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소유의 대상이자 권력의 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 전쟁이 국제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유이다.


자율주행차 미래, 반도체 기술에

얼마 전 타이거 우즈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골프 팬이라면, 그가 어서 회복해서 아들과 함께 라운딩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이거 우즈가 탄 자동차의 에어백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해 제때 터졌다는 사실이다. 에어백 시스템에서도 반도체는 가장 핵심적인 부품이다<<b>그래픽>.


일단 에어백 시스템에는 차량 충돌과 승객의 위치, 안전벨트의 상태를 감지하는 반도체 센서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충돌 시 발생하는 충격 신호를 증폭하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 뒤, 통신 반도체로 전송하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입력 신호를 기반으로 에어백에 폭발 명령을 내리는 제어 반도체(ACU)와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이 반도체들이 모두 빠른 속도로 정상 동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타이거 우즈가 다시 그린에 서는 모습을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도체 없이는 에어백도 없고, 자율주행도 없고, 배터리 제어도 없고, 미래 자동차도 없다. 결국 한국 미래 자동차 산업의 존망은 인공지능 기술과 함께 반도체 기술과 산업의 소유에 달려 있다.

최근 봄바람을 타고 류성룡이 세운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을 다녀왔다. 누각 만대루(晩對樓) 너머 바라다본 낙동강 모래 백사장이 멀리 산 밑 절벽까지 닿아 있었다. 수천 년의 비바람과 빠른 물살이 모래 백사장을 만들고 축적해 놓았다. 이 모래가 실리콘이 되고, 반도체가 되고, 디지털 혁명을 이룬다. 인류가 수천 년을 쌓아온 수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창의력이 세상의 진보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교수ㅣ조선일보 202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