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덕이 / 김남천
내가 어려서 아직 보통학교에 다닐 적에,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라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개라고 해도, 이즈음 신식 가정에서 흔히 기르는 세파드나, 불독이나, 뭐 그런 양견이거나, 매사냥꾼이나 총사냥꾼이 길들인 사냥개거나, 그런 훌륭한 개는 아니었습니다.그저 시골집에서들 항용 볼 수 있는 아무렇게나 마구 생긴 그런 개입니다. 도적이나 지키고, 남은 밥찌꺼기나 치우고 심하면 아이들 시중까지 보아주는 그런 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개를 퍽 좋아했습니다. 내가 까치 둥지를 내리러 커다란 황철나무 있는 데로 가면, 부덕이는 내가 나무 위에 올라가는 동안을, 나무 밑에서 내 가죽신을 지키며 꿇어앉았다가, 까치를 나무에서 떨구어도 물어 메치거나 그런 일 없이, 어디로 뛰지 못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개구리 새끼를 잡으러 갈 때에도 쫓아가고, 또 풀창을 놓으려 겨울 아침 눈이 세네 자씩 쌓인 데를 갈 때에도 곧잘 앞장을 서서 따라다녔습니다. 어디 저녁을 먹고 심부름을 갔다 밤이 지근하여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간 집을 찾아서 대문 밖에 꿇어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른들 중에 누가 나를 데려다 주려고 쫓아나오다가도, 부덕이가 꼬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내 발뿌리에 엉켜도는 것을 보면,
“부덕이가 있으니 동무가 될 게다. 그럼 잘 가거라.”
하고 안심시켜 나를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부덕이는 이렇게 항상 나와 같이 다녔습니다. 그가 나와 떨어져 있는 때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뿐입니다. 아침 책보를 들고 나서면, 뿌르르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나오다가도, 학교 가는 골목어구까지만 오면, 내가 가는 걸 뻔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집을 너무 떠나다니면 집안 어른들께 꾸중을 들었으므로, 내가 학교에 간 동안은 대개 집안에 있어서 제가 맡은 일 ― 말하자면 낯설은 사람을 지키거나, 찌꺼기를 치우거나, 곡식 멍석을 지키고 앉았거나, 방아간이나 연자간에서 새를 쫓든가 하고 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비가 오다 개인 날, 붉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서 참외막에 가느라 개울에 걸려서 하마터면 흙탕물에 휩쓸릴 뻔 한 것을 부덕이 때문에 살아난 적조차 있었습니다.
평시에는 퍽이나 얕은 개울이라, 나는 안심하고 건너던 터인데, 밀돌에 발을 곱짚고 물살이 센 데서 내가 그만 엎어져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살이 거세고 물이 예상외로 부쩍 불은 데 겁이 났던 나는, 이렇게 되고 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엎치락뒤치락 허우적 거리면서 저 만큼이나 급류에 휩쓸려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뒤로 오던 부덕이는 곧 앞지림을 해서, 아래 턱으로 흐르더니 나를 잡아 세우려고, 제 몸을 디딤발로 삼을 수 있도록 가로 던집니다. 내가 미처 일어나지 못하니, 부덕이는 내 몸의 괴침을 물고 얕은 데로 끌어내리려 듭니다. 겨우 나는 큰 돌을 하나 붙들고 얕은 데로 나와서 건등에 올랐는데, 머리가 뗑하고 앞뒤를 가눌 수 없어 한참이나 길 위에 누웠었습니다. 부덕이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가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물에 빠졌다가 부덕이 덕에 살았단 말은, 아예 할 생각을 않았습니다. 장마물에 나가지 말라던 걸 나갔던 터이라, 어른들께 꾸중 들을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가 나를 몹시 따르는 줄만 알았지, 그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건 알 턱이 없었습니다.
부덕이도 내 나이 자라는 대로 늙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다섯 살이 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학교에 갔다가 오는 길에 부덕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개는 아예 나이 먹도록 기를 건 아니야. 저 부덕이도 인제 흉한 짓 할 나이로군.”
하는 동네 늙은이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단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집 막간 사람이 어느 개가 팠는지 통수간 앞에 구덩이를 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어머니랑 아버지랑 듣는 데서,
“아까 뒷집 장손네 개가, 입으루다 흙을 파구 있든.”
하고 헛소리를하여 부덕이를 변명했습니다.
“원, 그런 망할 놈의 개가 어디 있담.”
어머니는 개가 구덩이를 파는 건 누가 죽어서 그 속에 묻히라는 것이나 같다고, 몹쓸 놈의 개라고 욕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지나서, 내가 학교에 가서 한 시간을 공부하고 마당에 나와 땅재먹기를 하며 노는데, 뜻밖에 부덕이가 찾아왔습니다. 부덕이가 학교에 나를 찾아온 적은 여태까지 없는 일이므로, 나는 이상히 생각했으나 미처 다른 걸 생각지는 못 하고,
“뭐 하러 와 가, 어서 가서 집에 가, 일을 봐.”
하고 쫓아 보냈습니다. 손으로 쫓고 발로 밀고 하니, 서너 발자국씩 물러가기는 했으나, 가기 싫은 걸음처럼 몇 걸음 가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학종이 울어서 나는 교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학하고 집에 돌아오니, 여느 때 같으면 마중 나오던 부덕이가 중문턱을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나는 부덕이가 늘상 들어가 자는 마루 밑을 거꾸로 서서 봅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 뜰안을 보아도, 통수 뒤를 보아도, 연자간을 보아도, 토끌 뒤를 찾아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덕아!”
하고 불러보아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나는 정녕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나는 낟가리를 얽고 있는 막간 늙은이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영감은 태연하니 제 일만 하면서,
“기둥흙을 석자나 팠다구 도수장으로 가져갔다”하고 대답합니다. 나는 억해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까 학교로 찾아왔던 건 아마 기둥흙을 파고 어른에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고 왔었던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더러 변명해 달라고 찾아왔던 것일까요, 아니 왜 그는 두 번 세 번씩 땅을 파고 기둥흙을 파고 하였던가요 ― 나는 부덕이의 행동도 알 수 없었고, 그것을 흉행이라고 몰아대는 어른들의 일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마른 호박 넝쿨 밑으로 가서, 부덕이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 김남천(金南天, 1911~1953) 소설가, 문학평론가. 장편소설 〈《대하 大河 》 외에 창작집 《소년행》 · 《삼일운동》 (1947) · 《맥》 (1947) 등이 있다. 그의 비평으로는 〈영화운동의 출발점 재음미〉(1930) · 〈임화에 관하여〉(1933) · 〈창작방법에 있어서의 전환(轉換)의 문제〉(1934) · 〈지식계급 전형의 창조와 ‘ 고향 ’ 주인공에 대한 감상〉(1935) · 〈고발(告發)의 정신과 작가〉(1937) · 〈도덕의 문학적 파악(把握)〉(1938) · 〈세태와 풍속〉(1938) · 〈시대와 문학의 정신〉(1939) · 〈소설의 운명〉 (1940) · 〈소설의 장래와 인간성 문제〉(1941) · 〈민족문학 건설의 기본임무〉(1946) · 〈조선문학의 재건〉 (1946)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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