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통증을 만들어내는 뇌 (daum.net)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작은 충격이 느껴졌고 앞차 운전자가 내렸다. 미안하고 당황한 와중에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뒷목을 잡고 내리던 앞차 운전자가 온갖 검진 끝에 입원을 하시겠단다. 충격이 크지도 않았구만 입원이라니, 미안함은 사라지고 이거 ‘나이롱’ 환자 아닐까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반대 상황도 있다. 멀쩡히 가고 있는데 다른 차가 내 차를 받았다. 차에 흠집이 난 것도 마땅찮고, 바쁜 중에 고치러 가야 하는 건 더 마땅찮은데,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아프다. 검사를 해봐도 딱히 이상이 없다고 하니 외려 불안해지는데, 내 차를 받은 차의 운전자는 미안해하기는커녕 나를 나이롱 취급한다.
앞차와 뒤차 운전자가 체감하는 통증은 다르고, 나이롱 환자들이 신뢰를 깨버린 탓에 미안하던 사람도, 아픈 사람도 불쾌해지기 일쑤다. 양쪽 운전자가 느끼는 통증은 왜 다른 걸까?
◆ 통증이 다른 까닭
두 자동차가 충돌했을 때, 양쪽 차량에 전해지는 충격의 크기는 같다. 양쪽 차가 서로를 미는 힘(작용과 반작용)과 충돌하는 시간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전자에게 전해지는 충격량은 범퍼의 충격 흡수 능력, 차체가 충격을 분산하는 정도, 외부 충격이 운전자에게 전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운전자에게 전해지는 충격량이 비슷하더라도 통증의 정도는 ‘사전 예측’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놀이동산 범퍼카를 생각해보자. 내가 친구의 범퍼카를 들이받을 때, 나는 언제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질지를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돌진하는 나를 미처 보지 못했던 친구는 느닷없는 충격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친구 녀석의 약오른 표정을 봐도 분명하다.
신체적 차이도 중요하다. 두 대의 범퍼카가 부딪혔을 때,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의 몸과 가벼운 사람의 몸이 튀어나가는 속력은 다르다. 거북목 증후군에 시달리던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느끼는 통증의 차이도 만만찮을 것이다.
통증 자체의 주관적인 속성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정도의 손상이라도 통증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신체 손상이 없는데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 없는 신체 부위가 아플 수도 있다. 예컨대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이 있지도 않은 팔의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 통증을 만들어내는 뇌
통증은 뇌가 만들어낸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통증보다는 단순한 오감을 생각해보자. 새싹은 연두색, 진달래는 분홍색으로 보이지만 눈이 새싹과 진달래에서 탐지하는 것은 특정한 파장의 전자기파일 뿐이다. 이 전자기파를 뇌가 해석해서 연두색과 분홍색이라는 감각 경험이 생겨난다. 과자는 달고, 식초는 새큼한 것도 혀가 탐지한 화학 분자가 뇌에서 달고 새큼한 맛으로 변환됐기 때문이다. 음악이 즐겁고, 칠판 긁는 소리가 고통스러운 것도, 뇌가 공기의 진동을 소리라는 감각 경험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와 맛과 냄새로 가득한 이 세계는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가 해석해낸 결과다. 그렇기에 감각 경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뇌의 상태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우울할 때면 평소 좋아하던 음식도 맛이 없고, 여럿이 함께 부르면 익숙한 노래도 흥겹다. 누군가는 좋아해서 뿌렸을 향수 냄새가 옆에 앉은 나에게는 괴로울 때도 있다.
통증도 마찬가지다. 몸 어딘가의 신경 신호가 감정, 인식 등 다른 정보와 통합되어 통증이라는 경험이 생겨난다. 그래서 감정과 인식이 달라지면 통증 경험도 달라진다. 일례로, 진통제를 투여받고 있는 피험자들에게 진통제 투여를 중단하겠다고 말하면, 실제로는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더라도 진통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특히 만성 통증은 신체 손상보다는 통증 경험을 만들어내는 신경계의 과민한 활동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경계의 활동을 조절하여 만성 통증을 줄이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통각에 관련된 뇌 부위의 활동량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보여주면서 활동량을 조절하도록 훈련시키면 통증의 크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
뇌의 활동을 조절해서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뇌의 활동을 관찰해서 나이롱 환자를 감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 방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특정 뇌 부위의 활동이 통증과 관련된다고 해서, 통증이 있을 때 반드시 그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차 운전자가 나이롱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열 받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방법은 내가 아니라, 나이롱 환자의 뇌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KBS 다큐멘터리 《마음》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시판되는 우유를 사다가 새 우유를 개발했다며 맛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피험자들이 시음하고 기다리는 동안, 피험자를 가장한 사람이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피험자들도 불편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피험자 중 한명은 다음날 피부에 두드러기가 났다. 멀쩡한 우유를 마셨는데 어째서 몸에 이상 징후가 생긴 걸까? ‘노시보’라는 현상 때문이다. ‘플라시보’가 치료에 대한 신뢰 덕분에 통증이 줄어드는 현상인 반면, 노시보는 생각이 고통을 부르는 현상이다. 실제로 통증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만성 통증 환자는 통증을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있는 통증을 참기만 해서도 안되겠지만, 있지도 않은 통증을 우기다 보면 통증이 진짜로 생길 수도 있다.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것이다. 몸도 바꿔내는 내 정신력을, 멀쩡한 자기 몸을 아프게 하는 데 쓰지는 말자.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17.04.03
/ 2022.06.0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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