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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다리미

푸레택 2022. 5. 16. 18:03

[임의진의 시골편지] 다리미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 다리미

[경향신문] 물건을 어디 뒀는지 찾느라 허둥지둥. 겨울옷 드라이를 맡겨놓고 왔으면서 찾느라 한참 옷장을 뒤졌어. 운전 중에 마시려고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뒀는데, 빈손으로 출발.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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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다리미 / 임의진 목사·시인

물건을 어디 뒀는지 찾느라 허둥지둥. 겨울옷 드라이를 맡겨놓고 왔으면서 찾느라 한참 옷장을 뒤졌어. 운전 중에 마시려고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뒀는데, 빈손으로 출발. 자주 그런다. 수다나 떨고 앉았을 노는 친구는 없고, 무엇보다 커피값이 비싸 커피집은 패스. 집에 놓고 온 맛난 커피가 계속 아른거려. 거절을 못해 금방 물고기처럼 잊고 낚싯바늘을 물곤 해. 이혼이란 인내력이 동날 때 가능, 재혼은 기억력이 없을 때 가능하다던가. 이 난리를 여러 번 치른 친구도 아는데, 아니면 말고 될 대로 되라 식 같더라. 그도 타고난 능력이겠지?

이런 얘기가 있어. 부인이 너무 건망증이 심해 국이며 생선이며 태우기 일쑤. 어딜 같이 나가면 “여보! 내가 다리미를 끄지 않고 나온 거 같아. 얼른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러기를 매번. 그러자 남편은 “응. 내 가방 좀 열어봐요” 부인이 뒷좌석 가방을 찾아 여는 순간 다리미가 들어 있더래. “내가 이제 다리미를 아예 갖고 다니기로 했소.” 아, 남편의 강력한 처방전.

사람들은 만나면 배틀이 붙곤 하는데, 건망증 배틀이 가장 재미있다. 택시에 타서 “기사님! 제가 어디 가자고 그랬죠?” 오히려 기사에게 묻고, 기사는 “손님! 도대체 언제 제 차에 타셨어요?” 하고 물으면 기사가 승.

스페인 여행 때 호텔에 딸린 헬스클럽에 가볼 기회가 있었어. 직원이 방향을 가리키며 “힘나시오” 하길래 ‘와, 한국말을 다 아네’ 큰소리로 ‘힘나시오’ 따라했더니 묘한 표정. 알고 보니 헬스클럽을 힘나시오(Gimnasio)라고 발음한다덩만. 이런 낱말은 금방금방 외우겠는데, 나머진 뒤통수부터 골머리가 띵. 나이 들면 어학공부가 힘든 게 기억력이 깜박깜박, 오락가락.

요즘은 마스크 땜에 더더욱 사람을 못 알아보겠어. 인사를 해오면 뉜지 모르면서도 답해드리고 ‘누구지?’ 계속 머리를 굴리게 돼. 두려운 건 역병이 끝난 뒤 마스크를 모두 벗게 될 때도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쩐다지? 알코올성 치매가 왔구나 하겠지. 정치도 발전이 더딘 건 건망증 때문이겠다. 잊을 만하면 불쑥 되돌이표. 당신이 그 일을 잊는 순간을 기다려온 것.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슴에 새기는 습관을 길러야 해. 다리미를 들고 다니진 말자고.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2.03.10

/ 2022.05.16(월)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