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삼등열차는 지금도 따뜻하고요/박미산 (daum.net)
삼등열차는 지금도 따뜻하고요 / 박미산
언제부터 살았나요 당신은,
알라하바드의 삼등열차가 다가옵니다
이틀 밤낮, 열차 칸에서 새우잠을 잤지요
원시림처럼 빽빽하게 서 있던 여자들이 어느새
족보를 등에 진 채 편안하게 앉아 있어요
수천 년 내려온 핏줄들 사이에
짜파티와 바나나를 나눠주는 나를
카레 냄새와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들이 바라보고 있어요
다섯 명의 하리잔 여인들과 일인용 의자에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잠이 들었어요
열차는 강물처럼 흘러갔지요
갑작스러운 복통에 참을 수 없는 신음과 진땀이 흘렀어요
검은 눈망울들이 소란스럽게 파도를 타기 시작했어요
내 곁에 있던 쉬레아가 주문을 외우자
여인들이 합창을 했어요
열차 안은 여인들의 주술이 출렁이고
그녀들의 눈빛이, 그녀의 거친 손이
밤새 내 몸을 쓸어주었어요
등허리가 축축해지며
따뜻한 강물이 내 몸에 흘러들어오고
태양이 떠올랐어요, 어느새
사리 입은 그녀들과 나는 긴 머리를 풀고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녀들과 나, 타다 만 시체들이 번져가는 물결 따라 떠다닙니다
(후략)
인도의 삼등열차는 따로 좌석이 없다. 개찰이 시작되면 짐을 들고 창문을 넘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 3인용 의자가 좌우로 놓인다. 한쪽에 일곱 사람이 끼어 탄다. 이마 위에도 의자가 있다. 2층 의자다. 이곳에도 일곱 사람이 탄다. 그들 모두 발을 아래쪽으로 떨군다. 아래층 사람의 이마에 까만 발들이 포도송이처럼 열린다. 바닥에 콩나물처럼 끼어 앉은 사람들. 열차 한 칸에 몇백 명이 타는지 알 수 없다. 땀 냄새와 짐승의 분뇨 냄새. 형언키 힘든 생의 냄새 속에 10분도 지나지 않아 나를 잊게 된다. 미움도 슬픔도 기쁨도 이름도 다 지워진다. 고통이 깊은 그대여, 인도의 이층 삼등열차를 타라. 당신의 고통이 따뜻한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18.11.30
/ 2022.05.16(월)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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