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이갑수의 꽃산 꽃글] 뻐꾹채

푸레택 2022. 5. 15. 18:26

[이갑수의 꽃산 꽃글]뻐꾹채 (daum.net)

 

[이갑수의 꽃산 꽃글]뻐꾹채

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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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꽃산 꽃글] 뻐꾹채 /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업을 겸해서 나들이를 왔다. 지도교수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터라 어렵게 짬을 내서 안내를 자청하고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것이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했다. 세월의 때를 시커멓게 묻혀가는 성곽과 그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식물들. 멀리서 보니 은사시나무가 훤칠하고 며느리밑씻개가 돌틈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말바위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이 코끝에 걸리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성북동이 발 아래 엎드렸다. 대부분 초행인 듯 단 몇 분 만에 확보되는 시원한 시야에 모두들 감탄했다. 몇몇의 입에서 성북동 비둘기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과연 학생들다운 이야기. 지금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시(詩)를 논하고 있는 것이렷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금방 숙정문이 나타났다. 문 밖으로 나가자 작은 공터가 있고 우뚝한 소나무 아래 한낮의 정적이 고즈넉이 고여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팔각정 숲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 뻐꾸기 소리를 들으매 퍼뜩 떠오르는 야생화가 있었다. 그것은 북악의 동생처럼 이웃한 인왕산에서 며칠 전 본 뻐꾹채였다. 얼핏 보면 흔한 엉겅퀴 같은 뻐꾹채는 내 허벅지를 찌르며 뻘쭘하게 뻗은 가지 끝에 보랏빛 꽃을 달고 있다. 아주 긴 궁리를 머릿속으로 깊게 하다가 이젠 바깥으로 뻥 터뜨려놓은 듯, 곱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생각의 힘!

4시를 지나는 중이었지만 뻐꾸기는 시계가 아니라서 두 번밖엔 울지 않았다. 뻐꾸기는 아무도 제 소리를 기억해 주는 이가 없자 입을 닫았는가. 뻐꾸기 울음은 호응해 주는 소리가 없자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는가. 북악의 뻐꾸기 울음을 홀로 받아 주고 있을 인왕의 뻐꾹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경향신문 2014.06.09

/ 2022.05.15(일)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