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꽃산 꽃글]광릉요강꽃
우리나라 달력을 보면 5월은 사연 많은 날들로 빼곡하다. 사랑으로 뭉클한 날도 있지만 눈물로 촉촉해지는 날도 많다. 특히 올해는 분노와 탄식으로 한 달을 몽땅 도배하고도 남았다. 곰팡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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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꽃산 꽃글] 광릉요강꽃 /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우리나라 달력을 보면 5월은 사연 많은 날들로 빼곡하다. 사랑으로 뭉클한 날도 있지만 눈물로 촉촉해지는 날도 많다. 특히 올해는 분노와 탄식으로 한 달을 몽땅 도배하고도 남았다. 곰팡이도 저에게 알맞은 세계를 향해 나날이 진화할 텐데 왜 우리는 공화국을 갈아치워도 뒷걸음질인가. 가수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다. 이에 빗대어 '사람은 눈물의 공장'이라고 말하고 싶은 요즘이다.
강원도의 깊은 산중. 함북정맥의 어느 능선을 세 시간 남짓 걸었다. 먹먹한 가슴도 달랠 겸 나선 산행이었지만 오르고 내리는 높낮이를 따라 마음도 출렁거렸다. 멀미가 어디 물 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랴. 목메이게 김밥을 밀어넣고 길을 재촉했다. 식물에 관한 촉이 발달한 산행 리더가 농담처럼 말했다. “흠흠 저쪽에서 꽃냄새가 나지 않나요?” 서슴없이 반질반질한 길을 버렸다. 넷이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경사면을 훑기로 했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은인자중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한 시간을 헤매었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골짜기 안에 도톰하게 융기한 능선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융단처럼 펼쳐진 녹색의 한 지점을 햇살이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그 햇살 끝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꽃이 있을 줄이야! 꽃 공부를 시작하면서 보기를 소원했던 꽃. 수목원이 아니라 야생에서 직접 보기를 소망했던 꽃. 그 꽃이 그곳에 차분히 앉아 있었다. 하늘에서 막 떨어진 커다란 눈물방울 혹은 그 눈물을 받아내는 단지 같은 꽃. 부채처럼 벌린 잎을 후광으로 거느린 채 첩첩산중을 굽어보는 꽃 앞에서 세 번 큰절하고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 말고 달리 다른 동작을 취할 수가 없었다. 내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잠깐이나마 한 방에 훅 가게 만든 꽃, 광릉요강꽃. 멸종위기1급.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경향신문 2014.06.02
/ 2022.05.15(일)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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